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위치한 독산성(禿山城)은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불리며,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한강 하류에 도성을 두었던 백제시대에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처음 축조할 때는 토성이었으나 이후 신라가 돌로 성을 보충하였다고 전해지며,
돌로 축조된 성벽의 길이는 약 3.24km 였으나 현재는 약 400m 정도의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적(史蹟) 제1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독산성에는 정문인 남문을 비롯하여 동문ㆍ서문ㆍ북문 등 4개문과 암문(暗門) 1개소ㆍ치(雉) 8개소ㆍ우물 1개소 등이 있으며,
성안의 물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속여 적이 물러나게 하였다는 세마대(洗馬臺)가 있다.
독산성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전해지며,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중에는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남문(南門)은 독산성의 정문으로 진남루(鎭南樓)라는 문루가 있었다고 하며,
이 문으로는 말과 소가 다닐 수 있었으며 독산성의 주 출입구 역할을 하였다.
1831년에 편찬된 화성지(華城志)의 기록에 따르면 문루(門樓)의 규모는 6칸이었으며
영조ㆍ정조ㆍ순조 때 고쳐지었다고 전해지며, 지금의 모습은 1979년에 복원하여 정비하였다.
독산성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전략적 위상이 계속 중시되어 1594년(선조 27년)에 관찰사 유근이 백성들과 함께 4일 만에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1602년(선조 35년)에는 당시 부사였던 변응성(邊應星)이 석성(石城)으로 다시 보수하였다고 한다.
그 후 1792년(정조 16년)에는 약 70일간 새로 짓는 것과 비슷하게 큰 규모로 공사를 하였고
1796년(정조 20년)에는 수원화성이 완공된 이후 협수체제(協守體制)를 구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당시 성의 둘레는 1,800보이고 성문 4곳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주춧돌 또는 석등 초석으로 2013년에 발견되었다.
독산성 암문(暗門)는 현륭원(顯隆園)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하여 서문을 폐쇄하고
1804년(순조 4년)에 새로이 만든 문이라고 한다.
서문(西門)은 남문과 함께 독산성의 주 출입구 역할을 했으며
1804년(순조 4년)에 현륭원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되었다고 한다.
파손되어 있던 서문은 1983년에 복원하여 정비하였으며,
바닥에는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門確石) 2개가 남아 있다.
동문(東門)은 사람만 다니던 문으로 화성지(華城志) 기록에 의하면 문루와 이름이 없고 1982년에 정비하였으며,
성문 안쪽에 보적사(寶積寺) 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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