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자리한 만안교(萬安橋)는 1795년(정조 19년)에 정조(正祖)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인 현륭원(顯隆園)에 참배(參拜)할 때 편리하게 건너기 위해 설치한 다리이다.
만안교는 길이 31.2m 너비 8m 규모의 7개의 홍예문(虹霓門) 다리로,
현재 다리 위에 아스팔트를 포장하고 콘크리트 난간도 덧붙여 놓아 원형이 많이 손상되었으나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이며,
그 옆에는 만안교비가 세워져 있다.
만안교의 7개 수문은 매끄럽게 다듬은 장대석을 총총하게 잇대어 홍예문(虹霓門)를 형성하였으며,
홍예는 하단부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의 모양은 완전한 반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아랫부분은 모래 속에 묻혀서 확실한 상태를 알 수 없다고 한다.
7개의 아치 사이에는 크고 작은 선단석(扇單石)ㆍ장군형(缶形)ㆍ잠자리형(蜻蜒形) 등으로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을 차곡차곡 쌓아 메꾸었으며,
아치 상단의 이맛돌은 중앙부를 둥글게 다듬은 장군형 무사석으로 연결하고 그 윗면에 장대석을 쌓아 길바닥을 형성하였다.
정조가 정기적으로 능행길에 오르면서 서울과 수원을 잇는 교통을 정비하게 되었으며,
원래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은 한강을 넘어 노량진에 닿은 뒤 과천을 지나 남태령을 넘어 인덕원을 지났으나
남태령을 넘는 길이 험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능행에 편리함을 도모하고자 새롭게 길을 닦았으며,
새 길은 금천을 지나 안양의 삼막천을 건너 수원에 이르는 길이었는데 이 때 삼막천을 건널 다리로 만안교를 축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안교는 처음에는 임시로 가설한 나무다리로 행차 후에는 철거하였으나
정조가 수원 화성을 정기적으로 왕래하게 되면서 영구적인 돌다리로 바꾸었다고 한다.
만안교는 원래 남쪽으로 약 460m 떨어진 안양교 사거리 교차지점에 있었으나,
1980년에 국도 확장 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되었다고 한다.
나무 다리가 불편하여 경기도 관찰사 서용보가 돌다리를 놓고자 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고
1795년(정조 19년)에 경기도 관찰사 서유방이 돌다리를 만들라는 어명을 받고 3개월에 걸쳐 만안교를 축조하였다고 한다.
다리 남단에는 다리 건립 당시 세운 ‘만안교(萬安橋)’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으며,
비석 뒷면에는 만안교의 축조가 경기도관찰사를 위시하여
병마수군절도사와 수원ㆍ개성ㆍ강화 등의 유수(留守)까지 동원된 큰 공사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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