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에 자리한 파주 삼릉(坡州 三陵)은 공릉(恭陵)ㆍ순릉(順陵)ㆍ영릉(永陵)의 3능이 있는 곳으로,
왕릉군의 앞머리를 따서 공순영릉(恭順永陵)으로도 불린다.
공릉(恭陵)의 장순왕후(章順王后)와 순릉(順陵)의 공혜왕후(恭惠王后)는 모두 한명회(韓明澮)의 딸이며,
왕실로 출가한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지는 못하였으며 단명하였다.
공릉(恭陵)은 1472년(성종3년)에 왕후로 추존된 조선 예종(睿宗)의 원비 장순왕후(章順王后) 한씨(韓氏)의 능으로,
처음에는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묘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소박하며, 병풍석ㆍ난간ㆍ망주석ㆍ무인석(武人石) 등이 없다.
공릉은 아래쪽의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참도(參道)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ㄱ자로 꺾여 있는 것이 특징이며,
지형조건 때문에 중간에서 꺾이게 되었다고 한다.
봉분 앞에 혼유석과 장명등이 놓이고 능 앞 양쪽에 문인석과 석마(石馬)를 세우고,
석양(石羊)ㆍ석호(石虎) 각 두 마리만 능을 호위하고 있다.
장순왕후는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장녀로 1460년(세조6년)에 16살의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인성대군(仁城大君)을 낳고 이듬해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순릉(順陵)은 조선 성종(成宗)의 원비인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韓氏)의 능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왕비의 예에 맞춰 조성되었으며 병풍석만 생략되었을 뿐
파주 삼릉 중 유일하게 왕릉에 갖춰야 할 석물들 모두 갖추었다.
공혜왕후는 언니 장순왕후가 죽은 지 6년 뒤 1467년(세조13년)에 11세의 나이로 자을산군(성종)과 가례를 올렸고
성종 즉위와 함께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5년 뒤 소생 없이 19살 나이로 단명하였다.
영릉(永陵)은 조선 21대 영조(英祖)의 장자인 효장세자(孝章世子)와 그의 비(妃) 효순왕후(孝純王后) 조씨(趙氏)의 능으로,
세자와 세자빈의 예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매우 간소하고 아담하며
왕릉(王陵)과 비릉(妃陵)을 나란히 한 쌍릉(雙陵)으로 곡장을 둘렀다.
진종(眞倧)은 영조의 아들이며 처음 경의군(敬義君)으로 봉해졌다가
영조가 즉위한 이듬해 1725년(영조 1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728년(영조4년)에 1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왕세자에게 효장세자(孝章世子)라는 시호를 내렸고 이곳에 묘를 조성하였으며,
이후 이복동생 장조(사도세자)의 아들인 왕세손(후에 정조)을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였고
효장세자는 정조 즉위 후 영조의 유언에 따라 진종으로 추존되었다.
효순왕후(孝純王后) 조씨(趙氏)는 좌의정 조문명의 딸로 13세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며,
이듬해 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있다가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후일 효장세자와 함께 왕후로 추존되었다.
재실(齋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陵參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향을 지낼 때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공간이다.
이 재실은 진종과 효순왕후의 능 재실로, 원래는 전사청ㆍ제기고ㆍ안향청 6칸ㆍ재실 32칸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재실과 일부 행랑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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