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자리한 종친부(宗親府)는 조선시대 역대 국왕의 어보(御譜)와 영정(影幀)을 받들어 모시고,
종친들의 봉작(封爵)과 증직(贈職) 등 인사문제와 종친간의 분규문제를 의논하고 처리하던 관아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법궁(法宮)이었던 경복궁 동쪽의 건춘문(建春文)은
종친과 왕의 외척ㆍ부마(駙馬)ㆍ상궁ㆍ나인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으므로,
건춘문 가까운 곳에 종친부를 두었던 것이라고 한다.
종친부(宗親府)는 왕실의 사무를 처리하던 경근당(敬近堂)과 고위관리들의 집무처인 옥첩당(玉牒堂),
그리고 하급 낭인들의 집무처인 이승당(貳丞堂)으로 이루어졌으나 경근당과 옥첩당만 현존한다.
종친(宗親)은 왕의 부계(父系)에 해당하는 친척으로,
조선시대에는 국왕의 적자(嫡子)에 해당되는 4대손까지, 서자(庶子)의 자손은 3대손까지로 정한 후 이들을 대우하여 군(君)으로 봉하였다.
종친부 건물은 중심이 되는 큰 건물인 중당(中堂)과 양쪽에는 익사(翼舍)가 익랑(翼廊)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왼쪽의 익사는 훼손된 것으로 보이며,
원래 자리는 소격동 165번지에 있었으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건립하면서 2013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현재 건물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곳으로 고증되며,
화강암을 다듬은 장대석 기단 위에 중당은 정면 7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익사는 중당보다 작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종친부(宗親府)는 고려 때의 제군부(諸君府)를 고친 이름이며,
조선 초에는 종친을 등용하기 위하여 종친과(宗親科)라는 특수시험을 보기도 하였다
종친부의 변천을 보면, 1864년에 종부시(宗簿寺)가 합쳐졌고 그 명칭도 1894년에는 종정부(宗正府)로 바뀌었고
이후 종정사(宗正司)ㆍ종정원(宗正院)ㆍ종부사(宗簿司) 등으로 이름을 고쳤으나
1907년에 폐지되고 그 사무는 규장각으로 옮겨졌다.
종친부에서 사용하였던 우물
경복궁 동쪽의 건춘문(建春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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