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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수원화성의 공심돈(空心墩)과 장대(將臺)

by kangdante 2021.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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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자리한 수원화성(水原華城)

정조(正祖)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華山)으로 옮기면서 축성한 성으로,

1794년에 착공하여 1796년에 완성한 둘레 약 5.7km 높이 4~6m의 성곽이다.

 

수원화성에는 전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는 관측소 역할을 하는 공심돈(空心墩)을 비롯하여

장대(將臺)성문(城門)적대(敵臺)포루(砲樓) 등 총 48개의 시설물이 있다.

 

 

공심돈(空心墩)은 전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는 망루와 같은 관측소로 화성에서 처음 등장하였으며,

수원화성 성곽에는 동북공심돈서북공심돈남공심돈 등 3곳이 있다.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은 화성에서 가장 독특한 건물 중 하나라 할 수 있으며,

원통형으로 축조되어 내부에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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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1796(정조 20)에 높이 5.42m 둘레 38m 규모로 완성되었으며,

6.25전쟁 때 완파된 것을 1975년에 복원하였다.

 

동북공심돈은 위아래에 구멍을 뚫어서 바깥 동정을 살필 수 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총포를 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으며,

성벽 상부에 3층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아래층에는 군사들이 몸을 가리게 되어 있다.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은 화서문 북치(北雉) 위에 세워져 있으며,

중국의 성서(城書) 제도에 따라 치성 위에 공심돈을 설치한 형식이며,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치를 만들고 그 위에 전돌로 3층의 망루를 세우고 망루 꼭대기에 포사(舖舍)를 지어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하였다.

 

서북공심돈은 1796(정조 20)에 완공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33~1935년에 수리하고

1975년과 1993년에도 유지 보존을 위한 부분적인 수리가 있었으며, 보물 제1710호이다.

  

 

서북공심돈은 석재전돌목조를 기능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치성의 석재쌓기 기법상부 공심돈의 전돌 축조기법현안과 총안전안 등의 중요한 시설 등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조형미를 갖고 있다.

 

서북공심돈은 벽면 위쪽 판문에는 전안(箭眼)이 뚫려 있으며,

돈대의 외벽에도 총안과 포혈(砲穴)을 뚫어 군사들이 밖을 내다보면서 화살과 화포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원화성의 장대(將臺)는 성곽 일대를 한 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영 외영(壯勇營外營)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화성에는 서장대(西將臺)와 동장대(東將臺) 2곳이 있다.

 

서장대(西將臺)는 화성행궁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팔달산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조는 다섯 번을 오르며 화성장대(華城將臺)라는 편액을 직접 썼다고 한다.

 

 

서장대는 1794(정조 18) 8월에 착공하여 한 달 보름 만에 완공하였으며,

정조는 1795년에 현륭원(顯隆園)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고 한다.

 

서장대 내에는 정조가 훈련 중인 군사훈련을 지켜본 후 감회를 읊은 시를 현판에 새겨 서장대에 걸도록 하였으며,

원래는 2층에 게시되어 있었으나 복제본을 1층에 걸고 원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동장대(東將臺)는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으로 일명 연무대(鍊武臺)라고도 하였으며,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있고 등성이가 솟아있어 화성의 동족에서 성안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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