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 위치한 수원화성(水原華城)은 정조(正祖)의 효심과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축성(築城)되었으며,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화성을 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원화성에는 화성의 정문이면서 북문(北門)인 장안문(長安門)을 비롯하여
창룡문(동)ㆍ화서문(서)ㆍ팔달문(남) 등 4대문, 그리고 적대(敵臺)ㆍ공심돈(空心墩)ㆍ포루(砲樓) 등 총 48개의 시설물이 있다.
장안문(長安門)은 수원화성을 둘러싼 4대 누문(四大樓門) 가운데 북쪽에 있는 관문으로 화성의 정문이며,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성문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누문(重層樓門)에
홍예문(虹霓門) 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바깥쪽으로는 원형의 옹성(甕城)을 갖추었다.
장안문은 바깥쪽에 둥근 옹성(甕城)을 갖추고 내부에는 적대(敵臺) 등과 같은 새로운 방어용 시설을 갖춘 점이 독특하다고 하며,
안쪽 홍예 좌우로는 무사(武砂)라고 부르는 네모반듯하게 다듬은 돌로 사다리꼴의 돌출면을 만들고
양쪽으로 계단을 설치하여 누각으로 오르도록 하였다.
장안문은 18세기 이후 성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옹성(甕城)과 적대(敵臺) 등 새로운 방어시설을 갖춘 진일보한 성문 건축이라 한다.
바깥 홍예에는 두 짝의 판문(板門)을 달고 홍예 위로 4개의 누조(漏槽)를 설치하였으며,
성벽 위에는 안팎에 총구(銃口)를 갖춘 여장(女墻)을 쌓았다.
장안문은 1920년대 수원시의 시가지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렸고 6·25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되었다가,
문루는 1978년에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장안(長安)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로써 백성들의 안녕을 상징하는 의미라 하며,
장안문은 조선시대 가장 큰 문으로 서울의 숭례문보다 크다고 한다.
창룡문(蒼龍門)은 수원화성의 4대문 중 동쪽 문이며,
1795년(정조19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그해 10월에 완성하였다고 하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창룡은 곧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이며 동쪽을 의미한다고 하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반달모양으로 쌓았는데 장안문이나 팔달문과는 달리 한쪽을 열어놓았다.
화서문(華西門)는 수원화성의 4대문 중 서문(西門)으로 1796년(정조 20년)에 완성하였으며,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라고 한다.
화서문은 좌우 성벽에 연결되는 돌로 된 기부에 홍예문(虹霓門)을 두어 그 위에 단층의 문루를 세웠으며,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서문은 사각형모양으로 반듯한 큰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축대 위에 1층의 건물을 세웠으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 건물이고,
축대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과 문의 앞쪽에 벽돌로 쌓은 반달모양의 옹성(甕城)이 있어서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구실을 하며 2중의 방어 효과를 갖는다.
팔달문(八達門)은 수원화성 4개의 성문 가운데 남문(南門)으로
화강암으로 된 석축에 홍예문을 내고 그 위에 여장을 돌린 다음
2층 누각을 세운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에 우진각지붕의 건물이다.
팔달문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당시 팔달문의 규모와 여기에 사용한 목재ㆍ석재ㆍ기와ㆍ전돌의 수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하며,
성문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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