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강변 언덕에 자리한 절두산 순교성지(切頭山 殉敎聖地)는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 군이 양화진(楊花津)까지 들어오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천주교인들을 처형하였던 곳이다.
절두산에서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은 대부분 프랑스 선교사와 교류한 일이 있거나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 함대와 관련 혐의가 있는 신자들이었다고 한다.
절두산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은 이의송(프랑치스코)으로 그의 부인ㆍ아들과 함께 1866년에 처형당하였으며,
교회 순교록을 통해 추정되는 병인박해 당시의 절두산 순교자 수는 약 200명 내외이고 기록으로 확인 된 순교자 수는 29명이라고 한다.
이후 이곳을 절두산 성지라 불렀으며 순교 100주년인 1966년 이곳에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되었고,
천주교는 이곳을 순교 성지로 기리고 있다고 한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성당 건물과 한국천주교 순교자박물관,
건물 앞마당에 김대건 신부 동상을 중심으로 성녀 마데 데리사ㆍ성(聖) 요한 바오로2세 등의 조형물,
그리고 정원처럼 꾸며져 있는 ‘십자가의 길’로 구성되어 있다.
절두산 성지는 합정동 일대의 한강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지역 한강변의 최고 절경으로 유명하며,
원래 이름은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잠두봉(蠶頭峰)을 비롯하여 용두봉(龍頭峰)ㆍ가을두(加乙頭)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절두산(切頭山)으로 불리게 된 유래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이곳 양화진까지 진격했을 때,
흥선대원군은 ‘양이(洋夷)로 더럽혀진 한강의 물을 서학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며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고 수많은 교인들을 붙잡아 양화진 근처의 이 산봉우리에서 목을 잘랐다고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절두산 순교성지 인근에 자리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은
개화기에 서구 문명을 전래한 인물과 독립운동을 지원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으로,
현재 13개국 500여기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묘역에는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려고 한국에 온 영국인 배설(裵說, Bethell)이 안장되어 있으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언론활동을 하다 1969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난 호머.B.헐버트(Homer B. Hulbert)박사의 묘,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결핵환자 치료를 위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한 셔우드 홀(Sherwood Hall) 박사의 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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