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에 위치한 죽주산성(竹州山城)은 주변에 울창한 소나무와 침엽수들이 가득한
전체 둘레 약 1,688m에 높이 6~8m(내성 및 복원 성벽은 2.5m 내외) 규모의 산성이다.
죽주산성은 내성ㆍ중성ㆍ외성의 중첩된 성벽구조를 갖추고 구축되었으며,
원래의 성벽이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외성뿐이고 내성과 중성은 심하게 훼손되었고
성벽의 동쪽 끝에는 포루(砲樓)가 있고 남쪽 성벽의 양끝에는 치성(雉城)이 남아있다.
죽주산성의 발굴조사는 2001년부터 연차적으로 실시되어 성벽의 구조가 내성ㆍ중성ㆍ외성 등 3중 성벽으로 구축되었음을 밝혔으며,
축조 시기 또한 내성은 조선시대에 중성은 신라시대에 외성은 고려시대에 축조되었음을 규명하였다.
죽주산성은 특히 고려시대 몽고군과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곳이라고 하며,
조선시대에도 한양으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지속적으로 산성을 보수하여 활용하였다고 한다.
산성의 내부에서 신라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계단식 저수시설 8기가 출토되었으며,
저수시설 내부에서 각종 기와ㆍ토기ㆍ무기류ㆍ공구류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죽주산성은 여러 시기의 축성법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 축성기술사의 보고라고 할 수 있으며,
고고학적으로 각 시대별 성벽 축조방법과 활용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라고 한다.
산성의 성벽은 기저부를 계단식으로 정지하고 내벽ㆍ외벽 및 속채움까지 모두 돌로 쌓았고 외벽에는 보축성벽을 덧붙여 쌓았으며,
성돌은 장방형으로 가공하여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수직에 가깝게 쌓아 올렸다.
죽주산성의 이러한 축성법은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 신라가 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해지며,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과정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되어 신라의 북진 전개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유적이라고 한다.
죽주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도성의 방어와 관련하여 중요시되었다.
신라시대에는 6세기 중반 경 신라가 북진하는 과정에서 대중국 교역항이 있었던 당항진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으로 산성이 축조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중성 북동쪽 2개의 능선과 계곡을 막아 외성을 축조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성벽을 겹겹히 두어 중성을 수축하고 그 안에 내성도 축조하였다.
죽주산성은 1236년(고려 고종23년)에 죽주방호별감 송문주(宋文胄) 장군이 몽골군과 15일간 전투를 펼쳐서 승리한 곳이며,
이는 6차에 걸친 몽골 침입에서 고려가 승리한 대표적인 전투 중 하나라고 한다.
몽고군은 갖가지 방법으로 1236년에 죽주성을 침입하였으나 송문주 장군의 활약으로 이 성을 굳게 지켰다고 하며,
성안에는 몽고침입 때 큰 전과를 올린 송문주 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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