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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연

조선 500년 왕도(王都) 서울의 역사를 담은 서울역사박물관

by kangdante 2022.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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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으로,

조선시대의 서울 등을 전시하고 있는 상설전시실을 비롯하여 기획전시실기증유물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상시전시실은 1234존 등으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전시실 1존을 제외한 나머지 234존은 지난 2021. 11. 1.부터 2022. 5. 20까지 개편 공사를 위하여 운영을 중단하고 있다.

 

녹황유 봉황문 수막새  

 

장식 기와편, 도제 벼루  

 

서울역사박물관 상시전시실 1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王都)를 세우다.’

조선의 건국과 수도 한양한양의 변화한양의 번영한양도성 안 마을도성 밖 한양, 성저십리 등으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상설 1존 전시실은 조선 건국 후 한양 정도(定都)부터 개항 이전까지 조선시대의 서울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한양의 육조거리와 시전을 중심으로 북촌중촌남촌, 그리고 성저십리에 걸쳐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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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전접시, 백자청화 모란문 접시편  

 

백자 장군  

 

조선 초기 이지대를 한성부 한성윤으로 임명하는 임금의 교지  

 

조선의 수도 한양은 우리의 옛 전통과 풍수지리, 그리고 유교적 이념을 겸비하여 건설되었으며,

우리의 성곽 전통에 따라 산세에 의지하여 도성을 건립하였다,

 

궁궐은 백악산 기슭에 건설하고 좌측에는 조상신을 모시는 종묘를, 우측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을 두었으며,

육조를 비롯한 주요 관청을 궁궐 앞에 배치하였고 시전은 동서를 연결하는 대로변에 설치하였다.

 

백자 항아리  

 

임진왜란 당시 군대편제 및 지휘체계를 설명한 도면인 오사합위일영지도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견된 명 사신의 영접을 담당한 경리도감 관원들의 모임 그림  

 

한양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전국의 생활 기반 시설은 물론 사회경제체제 또한 무너져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입었으며,

전란 후 선조와 광해군 대에 종묘와 창덕궁을 비롯한 도시 시설을 재건하면서 왕도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두 번의 전란 이후 조선은 전후 복구를 위해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기존의 국가운영 체제를 재편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훈련도감ㆍ어영청ㆍ수어청 삼군부의 수도방위 범위를 표시한 지도  

 

한양과 경기도 지역을 포함한 수도방위 주요지역을 표시한 지도  

 

광화문 앞 육조거리 모형  

 

한양은 왕과 고위 관료 등이 주로 거주하는 왕도(王都)였으며,

한양이 상업도시로 변모한 것은 17세기 후반 이후 삼남 지방의 대동법 실시, 금속화폐 유통 등으로

한양에서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부터이다.

 

대부분의 거래가 화폐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체제가 확립되어

노동력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게 되면서 특별한 기술재산 등이 없는 지방 사람들이 대거 한양으로 몰려들었으며,

그 결과 한양의 인구가 많이 증가하였고 인구의 구성 또한 상인과 수공업자임노동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의금부 관리들의 모임을 기록한 그림  

 

경희궁 경현당에서 영조와 왕세자, 관원들의 모임을 그린 그림  

 

경희궁도  

 

조선시대 한양의 도시공간은 한양도성을 기준으로 도성 안과 도성 밖 성저십리 지역으로 나뉘며,

한성부의 행정편제로 도성 안팎 지역을 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의 오부로 나누었다.

 

이들 지역은 북촌남촌중촌서촌동촌 등으로 나누어져 자연 경관과 입지 조건,

거주자들의 신분적 특성에 따라 각각 지역문화 양상이 달랐다.

 

안경, 안경집, 표주박  

 

화장용구 분전(粉廛)  

 

비녀, 뒤꽂이  

 

도성 밖 성저십리의 범위는 동쪽으로는 양주 송계원과 대현까지, 서쪽으로는 양화도와 고양 덕수원까지,

남쪽으로는 한강과 노량진까지 속한다.

 

조선전기에는 도성 밖에 많은 사람들이 살지 않았지만 조선후기가 되면서 한양 인구의 약 50%가 거주하게 되었으며,

도성 밖 성저십리는 조선후기 한양이 왕도에서 상업도시로 변모했음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성균 유생들의 계첩 반궁도  

 

문묘 석전제 절차와 문묘 건물, 제기 등을 설명한 도설  

 

인평대군 방 전도  

 

무관들의 창신동 연회 탑동연첩(塔洞宴帖)  

 

1760년 영조가 대규모의 개천정비사업을 완료하고 이를 기념하는 시를 모은 책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의 산수도  

 

황포돛배  

 

동호서호도  

 

진헌마정색도  

 

석조 연지  

 

도시모형 영상관  

 

선비가 세속을 유람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장면들을 소재로 한 병풍 그림 풍속도병(風俗圖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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