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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서삼릉(西三陵)의 희릉(禧陵)과 예릉(睿陵)

by kangdante 2022.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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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한 서삼릉(西三陵)에는 희릉(禧陵)예릉(睿陵)효릉(孝陵)의 삼릉(三陵)

의령원(懿寧園)효창원(孝昌園)소경원(昭慶園), 그리고 회묘(懷墓) 등 후궁 묘역과 왕족 태실군 등이 있다.

 

서삼릉은 단일지역으로는 조선시대 가장 많은 왕실 묘소가 자리해 있는 묘역이며,

인조의 효릉과 소경원은 출입금지구역이고, 회묘 등 후궁 묘역과 왕족 태실은 예약으로 관람할 수 있다.

 

 

희릉(禧陵)은 중종(中宗)의 두 번째 왕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의 능으로,

처음에는 태종의 헌릉 서쪽 언덕에 조성되었다가 1537(중종 32)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중종이 1544년에 세상을 떠나자 희릉 옆 언덕(현 철종 예릉 자리)에 중종의 능이 조성되어 정릉(靖陵)이 되었으나,

1562년에 중종의 능을 선릉 동쪽으로 옮겨지자 지금의 희릉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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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릉(禧陵)의 능침(陵寢)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문석인무석인장명등혼유석 등의 석물(石物)을 배치하였다.

 

장경왕후(章敬王后)은 윤여필(尹汝弼)의 딸로 1506년에 중종의 후궁 숙의(淑儀)가 되었으며,

다음해 1507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 사이에서 1(인종) 1(효혜공주)를 낳았고 1515년에 인종을 낳고 7일 만에 산후병으로 25세에 세상을 떠났다.

 

 

예릉(睿陵)은 철종(哲宗)과 철인황후(哲仁皇后) 김씨가 나란히 묻힌 쌍릉(雙陵)으로,

원래는 중종의 정릉(靖陵)이 자리했던 곳으로 이장되면서 이 자리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예릉은 철종 다음의 고종과 순종이 황제였으므로 황제 능의 법식을 따랐기 때문에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 따라 조성된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릉법식 형태라고 한다.

 

 

예릉의 봉분은 병풍석 없이 난간석으로 연결된 쌍릉이며,

곡장을 두른 봉분에는 혼유석망주석장명등문인석무인석석양석호석마 등의 석물이 배치되었다.

 

철종은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아들로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순원황후(純元皇后)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으며,

철종과 철인황후는 1908(융희 2)에 각각 철종장황제와 철인장황후로 추존되었다.

 

 

효창원(孝昌園)은 정조와 의빈 성씨(宜嬪 成氏)의 원자인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무덤으로,

1784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창덕궁 별당에서 5세의 나이에 죽었다.

 

효창원은 원래 효창묘(현 서울 효창공원 소재)로 조성하였으나 1870년에 효창원으로 격상하였으며,

처음에는 조선의 세자 묘제 형식에 맞춰

정자각비각문석인석마장명등혼유석망주석석양석호 등을 배치하였으나

1944년에 서삼릉으로 이장하면서 원침에 있는 석물신도비묘표석만 옮겨 왔다고 한다.

 

 

의령원(懿寧園)은 영조의 세손이자 사도세자와 혜빈 홍씨(惠嬪 洪氏) 사이의 큰아들인 의소세손(懿昭世孫)의 능이며,

1751년에 왕세손에 책봉되었으나 불과 3세에 세상을 떠났다.

 

의소세손이 세상을 떠나자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묘를 조성하고 의소묘(懿昭墓)라 불렸다가

1870년에 의령원(懿寧園)으로 격상되었으며,

처음에는 세손의 묘소 형식에 맞게 조성하였으나

1949년에 현재의 서삼릉으로 이장하면서 원침에 있는 석물과 표석만 옮겨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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