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광희문(光熙門)은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인 남동쪽에 세운 서울 성곽의 4소문 중 하나로
남소문(南小門)이라고도 부르며,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시구문(屍口門)이었다.
광희문(光熙門)은 1396년(태조 5년)에 도성을 쌓을 때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인 남동쪽에 세운 것으로,
1711년(숙종 37년)에 고쳐 쌓았고 1719년(숙종 45년)에 석축 위에 문루를 짓고 '광희문(光熙門)'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광희문은 수구문(水口門)ㆍ시구문(屍軀門)이라고도 하며 소의문(서소문)과 더불어
한양시민들이 죽으면 상여에 싣고 운구 할 수 있는 저승 문이었으며,
조선조 500년간 시신(屍身)은 반드시 이 두 문중 하나를 거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광희문 밖은 시신이 즐비하였으며
1886년(병인년)에는 도성 안에 콜레라가 크게 돌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광희문 밖은 내다버린 시체와 죽기 직전의 환자들로 아수라장이었다고 전한다.
수 백년 동안 수많은 죽음을 지켜 본 광희문이므로
조선시대에는 ‘시구문 돌가루’가 주술적(呪術的)인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서울에 가거든 시구문의 돌가루를 긁어 오라’는 말이 있었다고 전해 온다.
광희문(光熙門)은 소의문(昭義門)ㆍ혜화문(惠化門)ㆍ창의문(彰義門)과 함께 조선 한양의 4소문(小門) 중 하나이며,
소의문은 일제 때 헐리고 없어졌으며 혜화문은 최근에 복원하였다.
광희문은 1899년에 전차가 개통되고 도로가 개설되면서 한양성곽이 철거되기 시작하면서
광희문과 동대문까지의 성곽이 모두 헐리게 되었으며,
1915년에는 광희문 문루(門樓)가 무너져 홍예(紅霓)만 초라하게 남았었다,
그 후 석축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75년에 홍예 석축을 해체하여
남쪽으로 15m 옮기고 문루(門樓)을 새로 짓고 주변의 200여 평을 녹지화하고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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