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은 영국 첩보국의 평범한 요원이었던 제임스 본드가 살인면허인 더블 오(00)를 받게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맨몸 사투(死鬪)와 가슴 아픈 사랑을 선보이면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007시리즈의 정형화된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선보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007 카지노 로얄’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첫 번째 소설이지만, 007시리즈 영화로는 21번째 작품이며, 이번 영화는 기존 007시리즈와 대결구도를 차별화하여 새로운 부활을 꿈꾸며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대단한 변신이라 할 수 있다.
영국 첩보영화 007시리즈는 1962년의 ‘살인번호 Dr. No’를 시작으로 20여 편의 단골 메뉴가 60년대 냉전구도 하에서 시작된 소련 KGB와의 대결구도라 할 수 있다. 그 후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는 소위 공공의 적이라 할 수 있는 마피아(Golden Eye)라든지, 미디어를 통한 세계제패(Tomorrow Never Dies), 그리고 이도 모자라 우주(Moonraker)에 까지 소재를 다루었으며 북한(Die Another Day)도 여기에 한몫 거들기도 하였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제작자 바바라 브로콜리(Barbara Broccoli)는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였다고 하며, 마틴 캠벨(Martin Campbell) 감독 역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제임스 본드다” 라는 각오로 임했다고 하는데, 요즘 정치나 기업에서 절박한 논리로 회자되고 있는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논리가 007 영화에도 적용된 것 같다.
영화 ‘007 카지노 로얄’이 살인면허를 얻기 위한 최초의 작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영화는 예전의 007시리즈 영화와는 확실히 다른 몇 가지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변화는 영화 속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상대하여야 할 대결구도가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다. 종전의 ‘세계평화를 위하여’ 라는 거창한 주제에서 벗어나 현대에 걸맞게 악당의 유형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종전에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소련을 대상으로 하거나,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당들의 야욕에 맞서 싸우는 것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이번엔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게 오로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모든 악행을 저지르는 국제 테러조직의 자금책과의 싸움이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주식시장에서의 불공정 거래를 통해 불법자금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막는다든지, 카지노에서 도박을 통해 국제 테러조직의 자금을 획득하려는 것을 저지하는 등의 현대적 시류에 맞는 설정이다.
영화 ‘007 카지노 로얄’에서 제임스 본드가 상대하여야 할 르 쉬프르(매즈 미켈슨)는 은행가이면서 대형 카지노를 운영하는 인물이자 국제 테러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자금책으로서, 불공정거래를 통한 주가 조작이나 카지노에서 포커를 통해 이익을 걷어 들이는 국제적 악덕 자본가라 할 수 있다.
또한, 종전 007 영화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첨단 무기로 무장한 제임스 본드는 온데간데없고 신무기 대신 거칠고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맨몸 액션과 노트북 하나로 M(주디 덴치)의 아이디로 접속하여 정보를 얻거나, 독주(毒酒)를 마셨을 때 본부와의 통신을 통해 해독방법을 얻는 것이 고작이다.
007 영화의 대부분이 영화 도입부분을 화려한 액션으로 시작하지만, 이 영화의 도입부분인 추격 장면은 화려하진 않지만 매우 거칠고 투박한 액션으로 이어져 처음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한다.
영화 ‘007 카지노 로얄’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한 장면은 수 백 미터 위 골조 공사장에서 목숨을 건 맨몸 대결이라든지, 달리는 트럭에 뛰어내리는 등 도망치는 테러리스트 몰라카(세바스티엔 포칸)와 펼쳐지는 5분여 동안의 아슬아슬한 추격 장면으로써, 관객의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매우 스펙터클하고 역동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최첨단 무기로 활약하던 기존의 제임스 본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며, 전에 볼 수 없었던 몸으로 직접 뛰면서 부딪히는 유형의 액션으로 이 영화 전편에서 느껴지는 거칠고 투박함을 예고한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강한 적과 싸워도 흐트러짐 하나 없이 멋지고 깔끔하기만 한 영국 신사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아직은 세계 최고의 스파이답지 않은 허술함을 보이기도 하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직업을 포기하겠다는 등 지극히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면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제임스 본드는 이 영화에서는 종전의 사랑과는 전혀 다른 비극적 아픈 사랑을 겪기도 한다.
영화 ‘007 카지노 로얄’는 또한 007 시리즈 중 최고라는 1억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액션 블록버스터답게 볼거리도 많다.
공매도(空賣渡) 후 주가폭락을 유도하기 위한 신형 비행기 스카이플릿 폭파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벌이는 공항 활주로에서의 유조트럭과의 스펙터클한 한판 액션이라든지, 그리고 6미터 아래의 베니스의 그랜드 해협 물 속으로 함몰되며 가라앉는 베니스 유적 건물의 수장장면 등은 이 영화의 대표적 볼거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는 긴장감 넘치는 무제한 배팅 게임인 “홀뎀 포커” 또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관객의 허를 찌르는 반전 또한 재미있다. 기존의 영화였다면 베스퍼 그린(에바 그린)과 행복한 시간으로 끝나야 하겠지만, 반전의 내용이 예상된 반전이 아니라 관객의 허를 찌르는 또 다른 반전도 있다.
사족(蛇足)
영화 ‘007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서는 비록 볼썽사나운 고문 장면이기는 하지만,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군더더기 없는 멋진 근육질 나신(裸身)을 볼 수 있는 볼거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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