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아한 세계’는 조폭이기 때문에 삶 자체는 하루하루가 피곤하지만 가족과 안락하고 우아한 세계를 꿈꾸는 우리네 40대 아버지들의 외로움과 비애를 담은 아버지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아버지의 직업이 조폭이라 한편으로는 우리네 평범한 가족과는 다르다 할 수 있겠지만, 아내와 자식의 틈새에서 아버지가 겪고 있는 애처롭고 고달픈 모습은 여느 가족과 바를 바 없기 때문이다.
영화 ‘우아한 세계’는 삶에 지쳐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 미령(박지영)의 바가지와 아버지의 직업이 조폭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라리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서슴지 않는 사춘기 딸 희순(김소은)의 무시 속에 살아가는 아버지 강인구(송강호)를 통해, 가족의 버팀목이었던 옛날의 아버지는 사라지고 아버지의 자리가 점차 위축되고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오늘의 아버지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굴지의 투자사를 설립한 전설적인 흑인 기업가 크리스 가드너(Chris Gardner)의 기적 같은 실화를 그린 영화 ‘행복을 찾아서’라든지, 아버지와 아들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차승원 주연의 ‘아들’ 등 아버지에 관한 영화가 소개되기는 하였지만, 대부분 헌신적이고 애틋한 어머니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지만 아버지의 애환과 외로움을 소재로 한 영화는 흔치가 않은 것 같다.
주변의 적으로부터 매일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위험 속에서도 오직 가족의 행복과 우아한 세계만을 꿈꾸며 피곤한 하루하루를 참고 견디는 인구가 조폭이라는 직업을 부끄러워하는 딸의 비난과 조폭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윽박지르는 아내에게 던지는 이 한마디는 이 세상 모든 아버지가 가족에게 던지는 절규인가도 모른다.
"희순이는 어려서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은 뭐라 그래도 당신이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알면서. "
영화 ‘우아한 세계’의 마지막에는 과연 가족의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관객에게 묻는다. 그가 그토록 우아한 세계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왔던 널찍하고 멋진 집을 구했지만, 기러기 아빠가 되어 홀로 라면을 먹으며 유학 보낸 아들과 딸 그리고 부인이 행복해 하며 희희낙락하는 유학생활 비디오를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허탈한 웃음과 가슴으로 울고 있는 인구의 애처로운 모습에서 우리네 아버지들은 가족의 행복이 이런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비통함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우아한 세계’는 무늬만 조폭 영화일 뿐 그 내용은 조폭 영화라기보다 가족에게 아버지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초라하고 비정한 조폭의 세계를 그린 ‘비열한 거리’가 그랬듯이, 그동안 조폭을 멋있고 의리 있는 집단으로만 그려왔던 기존의 영화와는 달리 조폭영화가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 ‘우아한 세계’는 볼거리도 제법 있다. 도심 한 복판에서 역주행하며 벌이는 숨 막히는 자동차 추격전과 마지막 대형버스와의 충돌장면은 인구가 처한 절박함을 그대로 표현한 듯 안타깝기까지 하지만 긴박감 넘치는 스릴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상대편 조직원이자 오랜 고향친구인 현수(오달수)의 등장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무겁게 바라보거나 고민에 빠지지 않도록 하며 영화적 재미를 주기도 한다.
현수의 첫사랑에 관한 놀림으로 시작된 물장난 장면이라든지, 자동차 추격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제일 먼저 현수에게 전화를 하는 것 등은 비록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조폭세계이지만 그들에게도 순수함과 우정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진면목은 역시 송강호가 아닐까 한다. 영화 ‘괴물’을 비롯하여 살인의 추억ㆍ공동경비구역 JSAㆍ밀양 등과 최근의 영화 기생충ㆍ밀정ㆍ브로커 등 수없이 많은 흥행작을 선보인 송강호는 흥행의 대가답게 역시 영화 속 캐릭터 그 이상을 소화하는 대단한 배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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