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자리한 길상사(吉祥寺)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으로 1995년에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末寺)인 대법사로 등록한 사찰이라고 한다.
1997년에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松廣寺)의 옛 이름인 길상사(吉祥寺)로 바꾸어 창건하였으며, 길상사(吉祥寺) 절 이름은 ‘길하고 상서로운 절’이란 의미로 묘길상(妙吉祥) 곧 문수보살의 별칭에서 인용된 불교용어라고 한다.
길상사의 건물들은 원래 1960년대~1980년대 말까지 삼청각ㆍ청운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최고급 요정 중의 하나였던 대원각의 건물들이었다고 하며, 김영한(길상화보살)이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하였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불문에 귀의한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었으며 김영한 사후에도 길상사에서 정기법회를 열었다고 하며, 2010년 3월에 길상사에서 77세로 입적하였다.
길상사 경내에는 대웅전 법당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지장전ㆍ설법전ㆍ적묵당(寂默堂)ㆍ길상선원(吉祥禪院)ㆍ진영각(眞影閣)ㆍ범종각ㆍ일주문ㆍ종무소 등의 의 건물과 길상7층보탑ㆍ관세음보살상ㆍ길상화불자공덕비ㆍ길상화보살 사당 등이 있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를 봉안하고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대원각의 주인인 김영한(법명:길상화(吉祥花)) 여사는 1987년에 법정(法頂)스님에게 요정 건물의 기증 의사를 밝히고, 1997년에 대원각의 7,000여 평의 대지와 40여 동의 건물 등 부동산 일체를 조계종으로 등기 이전되면서 길상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997년에 법정스님은 길상사 개원 법회를 봉행하였고 1998년 1월 1일에 길상사 시민선방 '길상선원'을 개원하였으며, 그해 5월에 설법전에 '열린 시민선방'을 개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길상7층보탑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지혜와 용맹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암수사자가 기둥역할을 하고 입을 연 두 마리는 교(敎)를 상징하고 입을 다문 두 마리는 선(禪)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탑은 법정스님과 길상화 보살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종교화합의 의미를 전하고자 영안모자 백성학님이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2012년에 기단부에 오장경ㆍ금강저ㆍ오불ㆍ108침향염주ㆍ다리니 등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길상화보살 사당은 김영한을 모신 곳으로, 김영한(길상화 보살)은 16세의 나이로 기생으로 입문하여 진향(眞香)이란 이름을 받았으며, 1937년 천재시인 백석으로부터는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리었으며 ‘선가 하규일선생 약전’ 등의 저술을 남겼다.
길상화 보살은 1955년에 성북동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하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아 무주상보시하였다고 하며, 이 사찰에는 김영한 여사의 유해가 화장장으로 장례를 한 유해가 뿌려져 있다고 한다.
진영각(眞影閣)은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곳으로 내부에는 스님이 자주 쓰시던 만년필ㆍ시계ㆍ사진 등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나 아쉽게도 내부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법정스님은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인간의 선의지(善意志)와 진리의 길을 찾아 1956년 효봉 학눌(曉峰 學訥)의 문하로 출가하여 쌍계사ㆍ해인사ㆍ송광사 등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했으며, 이후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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