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화동에 위치한 서울교육박물관은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를 보존 계승하고 서울교육에 관련된 자료를 효과적으로 전시 홍보하여 서울교육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의장을 제공하는 교육전문박물관이다.
정독도서관 서울교육박물관에서는 지난 2024. 9. 11(수)부터 오는 2025. 7. 31(목)까지 광복 79주년 기념 서울교육박물관 특별전 ‘장난감으로 만나는 독립운동가’를 특별전시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시는 미래의 주역이 될 어린이에게 나라를 지킨 영웅들의 활동을 레고 장난감을 통해 보여주고, 그와 관련된 체험을 통해 역사를 재미있고 즐겁게 배우면서 평화로운 세계를 이끌 민주시민으로의 성장을 위한 전시라고 한다.
서울교육박물관 관람시간은 평일은 09:00~18:00까지이고 토ㆍ일요일은 09:00~17:00이며, 휴관일은 법정공휴일과 1ㆍ3주 수요일이고, 관람료는 무료이다.
일본은 한국의 주권을 빼앗기 위해 1907년(정미년)에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켰으며, 군대 해산에 봉기한 군인들은 각지에서 의병에 가담하였고 의병활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정미의병은 일제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남북 만주 연해주 지역으로 활동무대를 옮겨 항전을 지속하였으며 이후 만주와 연해주 지역의 의병들은 독립군으로 계승되어 발전하였고 광복 때까지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과 1907년 군대해산 등을 통해 한민족의 주권을 빼앗아 가고 있었으며, 이에 안중근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주도한 인물인 이토 히로부미를 1909. 10. 26 만주 하얼빈역에서 저격 사살하였다.
안중근은 바로 체포되었고 거사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를 위협하여 처단하였다고 답변하였으며, 안중근은 일본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뤼순감옥에서 1910. 3. 26 순국하였다.
유관순은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계획하고 군중을 모았으며, 이날 수천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하였다.
유관순은 일본헌병대에 의해 투옥되었고 1920년 3월 1일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는 등 일제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였으며, 유관순은 오랜 고문과 영양실조로 서대문형무소에서 1920년 9월 28일 18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이재명(李在明)은 1909. 12. 22 서울 종현천주교회당 문밖에서 기다렸다가 교회당으로부터 나와 인력거를 타던 이완용을 칼로 중상을 입혔다.
이재명은 법정에서 ‘이 거사는 의로운 행동이며 2천만 민족이 이를 찬성하였고 나는 죽어 환생하여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라고 말했으며, 1910. 9. 30 서대문형무소에서 24세 나이로 순국하였다.
도산 안창호는 민족을 위한 소명의식을 품고 구한말 현대적 국민교육의 중대성을 깨닫고 1902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며, 190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리버사이드로 이주해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면서 한인 계몽에 앞장섰다.
도산 안창호는 한인 협동조합인 공립협회와 동포의 취업을 돕는 한인 노동국을 세웠으며, 한인 타운에서 일궈낸 공동체 운동의 성과는 향후 항일 비밀결사 신민회와 민족운동단체인 홍사단을 설립하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김란사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일본과 미국에 유학하였으며, 유학에서 돌아온 후 모교인 이화학당에 부임해 여성독립운동가이면서 교육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김란사는 유관순이 가담해 활동한 학생자치단체 이문회를 이끌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었고, 일제의 부당함을 담은 고종의 밀서를 받고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에 머물던 중 독극물에 의해 사망하였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이끌고 있던 홍범도 장군은 다른 독립군 부대와 연합하여 1920년 6월 7일 봉오동 골짜기 인근에 포위진을 치고 일본군을 유인하여 일본군 전사자 157명 중상자 200여명의 대승을 거두었다.
봉오동 전투는 한반도와 만주 국경지역에서 한국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서 벌어진 첫 대규모 전투로서 1920년대에 독립전쟁이 활발히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상옥은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을 암살 모의하던 중에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김상옥은 그 일로 일본의 집요한 추격에 시달리다 발각되어, 종로구 효제동에서 일본 군경과 3시간 동안 총격전을 벌이다 총알이 다 떨어지자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자결하였다.
윤봉길은 1932년 4월 29일 폭발물을 일왕 생일 행사장에 투척하여 상해 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등 핵심 인물을 처단하고 주요 인사에게 중상을 입혔다.
윤봉길은 폭탄 투척 직후 체포되어 가혹한 심문과 고문을 받았으며 1932년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24세 나이로 순국하였다.
조명하(趙明河)는 일본에서 학업을 하던 중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상해임시정부로 가려했으나, 그 중간 기점인 대만의 타이중에 일시 체류하였다.
조명하는 1928년 5월 14일 대만을 방문 중이던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에게 단검을 던져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으며, 현장에서 체포되어 1928년 10월 10일 타이베이 교도소에서 순국하였다.
권기옥은 1925년 2월 항공학교 졸업 후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되었으며, 중국 공군 비행원으로 활동하면서 총 7천 시간 비행 등 많은 활약을 하였다.
광복 후 권기옥은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며 대한민국 공군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판옥선은(板屋船) 배가 높은 2층 구조로 일본 해군들이 기어오를 수 없었으며, 이는 일본 해군의 장점인 칼을 빼들고 펼치는 백병전을 전개할 수 없었다.
판옥선의 높은 구조는 위에서 아래를 향하여 활을 쏘기에 매우 유리하였으며, 함포의 포좌가 높이 만들어져 명중률이 높았다.
'전시.공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시, ‘태평계태평(太平繼太平)’ (51) | 2025.02.24 |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2) (62) | 2025.02.18 |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1),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 (62) | 2025.02.17 |
서울공예박물관 특별기획전, 공예로 짓는 집 (62) | 2025.02.10 |
국립민속박물관 기증 특별전, 꼭두 (50) | 2025.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