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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도심 속 자연경관과 함께 하는 근본도량, 길상사(吉祥寺)

by kangdante 202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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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길상사(吉祥寺)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으로 1995년에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末寺)인 대법사로 1995년에 등록한 사찰이라고 한다.

 

길상사는 1987년에 김영한 여사가 법정스님의 무소유 청빈 사상에 감동받아 7,000여 평의 대지와 40여 동의 부동산을 기증하며 길상사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법정스님은 199712월에 대법사를 길상사로 개명하여 창건되었다고 한다.

 

 

길상사(吉祥寺) 절 이름은 길하고 상서로운 절이란 의미로 묘길상(妙吉祥)’ 곧 문수보살의 별칭에서 인용된 불교용어이며,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松廣寺)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길상사 경내에는 본법당인 극락전(極樂殿)을 비롯하여 지장전설법전적묵당(寂默堂)길상선원(吉祥禪院)진영각(眞影閣)범종각일주문종무소 등의 건물과 길상7층보탑관세음보살상길상화불자공덕비길상화보살 사당 등이 있다.

 

 

 

극락전(極樂殿)에는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좌우에 두고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봉안하고 있다. 창건 당시 법정스님과 길상화보살님은 많은 불자들이 이고득락(離苦得樂)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셨다고 한다.

 

극락전의 탱화에는 아미타불이 주존으로 그려져 있으며, 왼쪽에는 대세지보살보현보살지장보살지국천왕중장천왕이 있고,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문수보살미륵보살다문천왕광목천왕 등이 배치되어 있다.

 

 

길상사의 건물들은 원래 1960년대~1980년대 말까지 삼청각청운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최고급 요정 중의 하나였던 대원각의 건물들이었다고 하며, 김영한(길상화보살)이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하였다고 한다.

 

길상사의 창건주였던 법정스님은 불문에 귀의한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었으며, 김영한 사후에도 길상사에서 정기법회를 열었다고 하며 20103월에 길상사에서 77세로 입적하였다.

 

 

길상7층보탑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지혜와 용맹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암수사자가 기둥역할을 하고 입을 연 두 마리는 교()를 상징하고, 입을 다문 두 마리는 선()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탑은 법정스님과 길상화보살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종교화합의 의미를 전하고자 영안모자 백성학님이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2012년에 기단부에 오장경금강저오불108침향염주다리니 등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상은 길상사의 뜻과 만든 이의 예술혼이 시절인연을 만나 이 도량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보살상 모습을 보는 이마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의 원력으로 온갖 고통과 재난을 벗어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상은 천주교 신자이자 가톨릭 예술가인 최종태가 건립한 것으로, 같은 조각가가 혜화동 성당에 건립한 성모 마리아 석상과 닮았다고 한다.

 

 

범종각(梵鐘閣)은 범종(梵鐘)을 중심으로 법고(法鼓)목어(木魚)운판(雲飯)과 함께 사물(事物) 중 하나이며, 창건 당시에 공덕주 길상화보살님이 단독으로 봉안되었지만 20099월에 여러 불자들이 동참하여 다시 조성되었다고 한다.

 

범종(梵鐘)은 땅 위와 하늘의 세계를 울려 인간과 천신을 제도하며,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법고(法鼓)는 땅 위의 생명을 제도하고, 물고기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목어(木魚)는 수중의 생명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대원각의 주인인 김영한(법명:길상화(吉祥花)) 여사는 1987년에 법정(法頂)스님에게 요정 건물의 기증 의사를 밝히고, 1997년에 대원각의 7,000여 평의 대지와 40여 동의 건물 등 부동산 일체를 조계종으로 등기 이전되면서 길상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997년에 법정스님은 길상사 개원 법회를 봉행하였고 19981월에 길상사 시민선방 '길상선원'을 개원하였으며, 그해 5월에 설법전에 '열린 시민선방'을 개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길상화보살 사당은 김영한을 모신 곳으로, 김영한(길상화 보살)16세의 나이로 기생으로 입문하여 진향(眞香)이란 이름을 받았으며, 1937년 천재시인 백석으로부터는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리었으며 선가 하규일선생 약전등의 저술을 남겼다.

 

길상화보살은 1955년에 성북동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하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아 무주상보시하였다고 하며, 이 사찰에는 김영한 여사의 유해가 화장장으로 장례를 한 유해가 뿌려져 있다고 한다.

 

시주 길상화 공덕비와 사당

 

 

진영각(眞影閣)은 법정 스님이 입적한 길상사 내 한옥 건물로, 스님이 길상사에서 회의나 차담을 나누고 잠시 쉬던 곳으로, 원래 건물의 이름은 행지실(行持室)’이었다고 한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에서 개인 방을 가지지 않았고, 단 하룻밤 묵지 않으셨으나 입적 후 송광사로 가기 전 이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머무셨으며, 2012년 이후 진영각은 전시관으로 개조되어 법정 스님의 초상화가사와 바루누더기 옷안경만년필 등 스님의 유품과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신행단체의 법회장소 및 초파일 연등작업과 소식지 발송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 적묵당(寂默堂)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있는 명상의 공간, ‘침묵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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