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와룡동의 창덕궁 내에 위치하고 있는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헌종 13년)에 지은 건물로 헌종(憲宗)의 서재 겸 사랑채였다고 하며, 원래 창경궁에 속해 있었으나 근래에 창덕궁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외형을 지닌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지붕 건물이며, 석복헌(錫福軒)ㆍ수강재(壽康齋) 등 3개의 건물을 총칭하여 낙선재라 부르며 보물 제1759호로 지정되어 있다.



낙선재는 또한 상중(喪中)에 있는 후궁(後宮)들이 거처하던 건물이기도 하였으며. 상중에 근신하는 후궁들이 소박한 건물에서 예를 갖추는 법도를 지키도록 하였다고 한다.
낙선재는 근래까지 대한제국의 황실 가족들이 실제 살았으나 조선시대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으며, 1990년대 들어서 낙선재의 증축한 부분들을 철거하고 조선시대 모습대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장락문(長樂門)은 낙선재(樂善齋)로 들어가는 정문으로 이 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뒤로 낙선재가 있으며, 일반적인 궁궐 문과는 달리 단청을 칠하지 않고 지붕이 행랑보다 높이 솟아 있는 사대부 가옥의 솟을대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장락문 현판 글씨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즐거움을 길이 누리라'는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며, 이 문을 들어서면 근심 걱정 없는 신선의 세계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


낙선재(樂善齋)는 단청(丹靑)을 하지 않은 소박한 궁궐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 기와지붕이며, 외국문물에 대한 왕의 기호를 반영하듯 낙선재의 창살 무늬와 상량정(上凉亭)의 건축 양식 등에서 청나라 양식이 보이기도 한다.
낙선(樂善)는 ‘선을 즐긴다’라는 의미이며, 맹자에 나온 ‘인의(仁義)와 충신(忠信)으로 선을 즐겨(樂善) 게으르지 않는 것(不倦)을 천작(天爵)이라고 한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낙선재는 헌종의 뜻에 따라 단청을 입히지 않아 외형이 소박하며, 외국문물에 대한 왕의 기호를 반영하듯 낙선재의 창살 무늬와 상량정(上凉亭) 건축 양식 등에서 청나라 양식이 보인다.
낙선재의 현판 글씨는 청나라의 문인 섭지선(葉志詵)의 글씨이며, 대청마루 앞 주련(柱聯)에는 김정희의 스승인 옹방강(翁方綱)의 글씨라고 한다.







석복헌(錫福軒)은 헌종이 자신과 효정왕후(孝定王后) 사이에 자식이 없자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고, 1848년(헌종 14년)에 경빈 김씨를 위해 낙선재 바로 옆에 지어준 안채이다.
석복(錫福)은 '복을 내려준다'는 의미로 왕실의 가장 큰 복인 세자(후사)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하며, 궁궐 전각임에도 단청을 칠하지 않고 화려함을 절제하여 일반적인 양반가의 한옥과 같은 단아한 멋을 풍긴다.



석복헌(錫福軒) 건물 난간의 호리병 장식이나 뒷문의 포도 문양 등은 자손을 번창시키려는 간절한 다산(多産)의 희망을 상징한다고 한다.
헌종이 석복헌을 지은 이듬해에 안타깝게 승하하자 경빈 김씨는 곧 궁을 떠나야 했으며, 그 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말년을 보내다 1966년에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수강재(壽康齋)는 1785년(정조 9년) 정조가 왕세자의 학문을 위한 공간(강학 전각)으로 처음 지었으며, 이후 효명세자가 별당 및 집무실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수강재는 낙선재 권역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ㄱ'자형 한옥이며, 낙선재ㆍ석복헌과 달리 창호 무늬가 비교적 단순하며 뒤편에 아름다운 화계(계단식 화단)가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강재(壽康齋)는 어린 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이 끝난 순원왕후(純元王后)를 모신 곳이었으며, 수강재도 낙선재 영역으로 편입시켜 석복헌(錫福軒)ㆍ수강재(壽康齋) 등 3개의 건물을 총칭하여 낙선재라 부르게 되었다.
수강재는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1962년 귀국 후 이곳에 머물다 1989년에 수강재에서 생을 마감하였으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말년을 보내다 1966년에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상량정(上凉亭)은 낙선재 앞 잔디밭에 있는 화려한 육각형 모양의 2층 정자로, 원래 이름은 평원루(平遠樓)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시원한 곳에 오른다’는 뜻으로 상량정(上凉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장대석 기단 위에 육각형 돌기둥을 세워 하층을 받친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주며, 헌종이 1847년에 낙선재를 조성할 당시에 함께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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