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자리한 창덕궁(昌德宮)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건축과 전통 정원을 잘 간직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며, 조선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궁궐이다.
창덕궁은 경복궁ㆍ창경궁과 더불어 임진왜란으로 1592년에 모두 소실되었으나 1610년(광해 2년)에 제일 먼저 다시 지었으며, 인조반정(1623년)으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는 등 몇 차례의 소실과 중건이 있었으나 그 뒤로 조선왕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정궁(正宮)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정전(仁政殿)은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사신 접견 등 나라의 공식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1405년 창건 후 임진왜란과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04년에 재건되었으며 국보 제225호이다.
인정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건물로 내부에는 임금의 자리인 어좌와 일월오봉도가 있으며, 1908년에 내부공사를 하면서 커튼ㆍ전등 설치 등 실내장식을 서양식으로 도입하였다고 한다.




창덕궁에는 정전(正殿)인 인정전(仁政殿, 국보 제225호)을 비롯하여 인정문(보물 제813호)ㆍ돈화문(보물 제383호)ㆍ선정전(보물 제814호)ㆍ희정당(보물 제815호)ㆍ대조전(보물 제816호) 등 국보급 문화재들이 많다.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에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경복궁(景福宮)에 대한 피방(避方)의 궁궐로 건립하였다고 하며, 동쪽에 자리 잡은 궁궐이라 하여 창경궁과 함께 동궐(東闕)로도 불렸다.



인정문(仁政門)은 창덕궁의 법전인 인정전의 정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며, 보물 제8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정문의 가운데는 왕이 출입하는 문이고 동쪽은 문관 서쪽은 무관이 이용하였으며, 임진왜란과 화재(1744년) 등으로 소실되었다가 1745년에 복구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804년(순조 4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희정당(熙政堂)은 침전에서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으로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원래의 희정당은 여러 개의 돌기둥 위에 세운 아담한 집이었고 마당에 연못도 있었다고 한다.
희정당의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 2년)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선정문(宣政門)은 선정전(宣政殿)의 정문이며 가장 큰 특징은 문에서 선정전까지 지붕이 있는 복도(천랑)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으로, 이는 비바람을 피하기 위한 용도로 현재 한국 궁궐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복도각 구조라고 한다.
선정전(宣政殿)은 궁궐의 사무공간으로 왕이 평상시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편전이며, 아침의 조정회의ㆍ업무보고ㆍ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다고 한다.




성정각(誠正閣) 일원은 왕세자의 거처이며, 정면에 보춘정(報春亭)이라는 편액과 측면에는 희우루(喜雨樓)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2층 누각과 연결되어 있다.
이 누각은 세자가 공부하다 머리를 식히는 곳이었다고 하며, 보춘정(報春亭)은 홍매화가 봄을 제일 먼저 알린다는 뜻이고 희우루(喜雨樓)는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반가운 비라는 뜻이라고 한다.






창덕궁은 경복궁ㆍ창경궁과 더불어 임진왜란으로 1592년에 모두 소실되었으나, 1610년(광해 2년)에 제일 먼저 다시 지어지었다고 하며, 이후 인조반정(1623년)으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는 등 몇 차례의 소실과 중건이 있었으나, 그 뒤로 조선왕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정궁(正宮)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창덕궁에서 즉위한 왕으로 효종ㆍ현종ㆍ숙종ㆍ영조ㆍ순조ㆍ철종ㆍ고종 등이 있으며, 역대 국왕 중 이곳에서 탄생하고 승하한 왕이 가장 많았으며, 또한 국왕이 상주한 기간이 가장 길었던 궁궐이라 한다.



승화루(承華樓)는 세자를 위한 공간인 중희당(重熙堂)의 부속 건물로서, 바로 옆에 위치한 삼삼와(三三窩)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보물 제8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승화루는 장방형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2층 누각 형태이며, 아래층은 트여 있고 위층에는 마루와 창호를 설치해 주변 풍경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기 좋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대조전(大造殿)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內殿)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로 보물 제81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조(大造)'란 '현명한 왕자를 생산하여 큰 공업을 이룬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대조전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는데 이는 왕이 용을 상징하므로 또 다른 용(용마루)이 왕을 누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설이 있으며, 대조전 벽화 내부에는 화려한 봉황도와 백학도 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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