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의 내부 좌우 벽면에는 시대별 우리 민족의 주요 전쟁 장면을 묘사한 대형 기록화들이 배치되어 있어, 역사의 현장을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채워져 있다.
기록화(War Paintings)들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제작된 역사적 기록물들이라고 하며, 인물의 복식ㆍ무기ㆍ지형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교육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645년(고구려 보장왕 4년)에 당(唐)나라 태종은 연개소문의 정변을 구실삼아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당시 중요 요새인 안시성을 점령하기 위해 당군이 쌓은 토산이 무너지자 안시성 성주가 이끄는 고구려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하여 마침내 당군을 물리쳤다.

660년(백제 의장왕 20년)에 김유신과 소정방이 이끄는 나ㆍ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하자, 계백은 5천 명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황산벌에서 결전하였다.
백제는 수적으로 우세한 5만 명의 신라군과 네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끝내 패배하여, 계백장군과 수많은 백제군이 전사하였다.

660년(신라 무열왕 7년)과 668년(문무왕 8년)에 나ㆍ당 연합군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나, 당(唐)은 최초의 약속으로 어기고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하였다.
이에 신라는 675년(문무왕 15년)에 매소성에서 당(唐)과 최후의 결전을 벌여 이들을 몰아내고 676년에 삼국을 통일하였다.

1356년(고려 공민왕 5년)에 동북면병마사 유인우(柳仁雨)는 천호(千戶) 이자춘(李子春)과 협력하여 원(元)에 빼앗겼던 쌍성(현재 함경남도 금야군)지역을 공략하였다.
이후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폐지하고 되찾은 지역에 화주목(和州牧)을 설치하여 반원(反元)ㆍ자주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갔다.

1370년(고려 공민왕 19년)에 이성계(李成桂)는 1만 5천의 병력을 이끌고 동녕부(東寧府) 우라산성(于羅山城)을 함락시켰다.
동녕부는 서경(평양)에 있단 원(元)의 통치기관으로 이후 고려의 요청에 따라 1290년(고려 충렬왕 16년) 압록강 건너 요동으로 옮겨졌으며, 고려는 원(元)ㆍ명(明) 교체기를 이용하여 북진정책을 추진하였다,

1592년 7월 이순신과 조선 수군(水軍)은 한산도에서 학익전(鶴翼戰) 형태로 일본군을 포위한 다음 맹공을 펼쳐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수군 전략가로써 이순신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전투이며, 조선 수군의 해상권 장악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866년(조선 고종 3년)에 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한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인해 프랑스 극동함대사령관 로즈(Roze) 제독의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여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났다.
이에 맞서 조선의 강화수비대는 갑곶진 일대에서 프랑스군과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1633년(조선 인조 11년)에 청북방어사 겸 안변부사 임경업(林慶業)은 청천강 이북의 방어를 위해 백마산성을 고쳐 쌓고 민병대를 훈련하는 등 대비를 하였다.
1636년(인조 14년) 청(淸) 태종이 조선을 침입하여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임경업은 백마산성을 지켜 적의 진로를 차단하였다.

진주성 전투는 1592년(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3대 승전(勝戰) 중 하나이며, 당시 진주성은 군량 보급지인 전라도를 지키는 길목으로 조선과 일본의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은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진주성민들과 힘을 합쳐 2만 명의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1592년(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는 경상도 의령에서 봉기하였다.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맞선 곽재우는 호남 진출의 길목인 남강유역의 정암진에서 이들의 진격을 저지하고 영남 전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1592년(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한 선조는 서산대사에게 나라를 구할 방법을 물었고, 서산대사는 직접 전쟁터로 나가겠다고 하였다.
서산대사(西山大師)는 그의 제자 유정과 함께 의승군(義僧軍) 천 500여 명을 인솔하여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성을 수복하였다

1592년 3월에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이 북진하자, 조정은 조경((趙儆)을 우방어사로 임명해 추풍령으로 파견하였으며, 이 소식을 들은 진주성 훈련봉사 정기룡은 상주에서 자원하여 조경의 군진에 합류하였다.
정기룡은 같은 해 4월 26일에 5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금산에 올라가 왜군을 기습하여 수 백 명을 격파했으며 포로가 된 조경을 구출하였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 김좌진ㆍ나중소ㆍ이범석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이 주축이 된 독립군 부대는 간도에 출병한 일본군을 맞아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회의 전투 끝에 크게 승리하였다.






351고지 공군지원작전은 강원도 고성 남쪽 351고지를 지키던 육군 제15사단을 휴전까지 항공지원한 작전이다.
특히 1953년 3월 26일 작전에서는 고지에 접근한 적을 직접 격퇴하여 참여한 조종사들에게 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대한민국 공군은 1951년 10월 11일 최초로 단독 출격작전을 시작하였다.
이때 F-51D 전투기 편대가 북한군의 주요 도로ㆍ철도ㆍ고사포 진지 등을 파괴하고 철원 창도리 지역의 보급품집적소를 폭격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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