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위치한 인천향교는 조선시대의 지방 국립 교육기관으로, 향교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406년(태종 6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을 볼 때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인천향교에는 현재 대성전ㆍ명륜당ㆍ동재ㆍ서재ㆍ동무ㆍ서무 등 총 6동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공자와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뒤에 있고,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앞에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을 띠고 있다.



인천향교는 조선시대에 유교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유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곳으로, 현재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제1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인천향교 이용시간은 10:00~18:00(하절기는 10:00~19:00)까지이고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관일이며, 주차장은 향교 옆 전용 주차장 또는 인천도호부관아와 공유하는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명륜당(明倫堂)은 학생들을 가르치던 강학 공간으로, 명륜당 앞마당을 중심으로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양반 기거)와 서재(서얼과 평민출신 기거)가 대칭으로 마주 보고 있다.
명륜당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직사각형 건물이며, 건물의 출입은 배면(뒤쪽)에서 이루어지며 정면 중앙 3칸에는 판문으로 된 창호가 달려 있으며, 명륜당에 앉아 창호를 열면 문학산의 산세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건물은 외벌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기둥을 세웠으며, 초익공 양식에 겹처마를 낸 굴도리집 구조이며, 내부 바닥은 장귀틀과 동귀틀로 구성된 우물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의 건물은 대성전이 맞배지붕인 것과 대조적으로 화려한 팔작지붕 형태를 띠고 있으며 주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며, 1976년에 대대적인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대성전(大成殿)은 공자를 비롯한 총 23위의 성현 위패가 봉안되어 모시고 제례를 올리는 향교 내 가장 신성한 공간이며, 공자를 중앙 정위에 모시고 안자ㆍ증자ㆍ자사ㆍ맹자 등 5성(五聖)과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설총 등 18현을 배향한다.
과거에는 동무와 서무에 나누어 모셨으나, 1975년 보수 공사 이후 모두 대성전 안으로 옮겨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옆면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제향 기능을 고려해 정면 앞쪽 1칸을 벽체 없이 비워둔 퇴칸(退間) 구조로 설계되었다.


대성전 건물은 2벌대의 장대석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퇴칸의 주춧돌은 원형으로 나머지는 막돌을 사용하였고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원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정면은 화려한 이익공 양식과 겹처마를 사용한 반면 후면은 단순한 초익공과 홑처마를 적용해 효율성을 높였다고 한다.
1406년(태종 6년)에 당시 지주사 신개가 대성전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이미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며, 병자호란(1636년) 때 소실된 것을 1701년(숙종 27년)에 다시 지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1976년 대대적인 보수를 거친 것이라고 한다.




재(齋)는 성균관이나 향교에서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으로, 명륜당이나 강단 앞에 좌우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로 강학 공간을 이루고 있다.
건물의 위치에 따라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구분하고, 동재에는 양반이 기거하고 서재에는 서얼이나 평민 교생들이 기거하였다고 한다.





무(廡)는 성균관이나 향교의 문묘(文廟)에서 유현(儒賢)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대성전 앞에 세운 건물이며, 건물의 위치에 따라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라고 한다.
본래 동무와 서무에는 공문 72현ㆍ한당22현ㆍ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모셔졌으나 중국 유현을 매안(埋安)하고 우리나라 18현을 대성전으로 옮긴 후 대부분 빈 건물로 유지되고 있다.


인천향교 앞 비석군(碑石群)은 과거 인천 지역을 다스렸던 인천도호부의 부사(府使) 및 현감, 그리고 경기도 관찰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총 18개의 송덕비(頌德碑)와 선정비(善政碑)들이며, 비석들은 본래 지금의 문학초등학교 등 인천 곳곳에 흩어져 있었으나 문화재 보호 및 관람 편의를 위해 향교와 인천도호부관아 사이의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비석의 형태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비석 양식인 머릿돌(가수)ㆍ몸돌(비신)ㆍ받침돌(비좌)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각 비석에는 해당 관리의 이름과 부임 시기,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문구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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