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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합장릉(合葬陵), 홍릉(洪陵)

by kangdante 2026.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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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홍릉(洪陵)은 고종황제와 그의 비() 명성황후의 합장릉(合葬陵)이며, 옆에 있는 유릉(裕陵)과 합칭(合稱)하여 홍유릉(洪裕陵)이라 불리며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홍릉은 유릉과 함께 대한제국 황제릉 양식으로 조성된 단 두 곳뿐인 왕릉이며, 홍릉을 역사적 가치로 볼 때 대한제국의 자주독립 의지 표명, 한국사 마지막 단계의 왕릉 양식,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역사의 장 등 세 가지 핵심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홍릉은 단순한 군주의 무덤을 넘어 주권을 지키려 했던 대한제국의 의지와 비운의 황실 역사를 대변하고 있으며, 고종은 전통적인 조선의 왕릉 제도를 버리고 중국 명나라 태조의 효릉(孝陵) 제도를 참조하여 능을 설계하여 대한제국의 자주독립 의지를 표명하였다.

 

홍릉은 조선이 중국의 제후국이 아닌 대등한 독립된 황제국임을 시각적공간적으로 선포한 정치적 기념물이며. 기존 왕릉의 정자각 대신 침전(寢殿)을 세우고 이국적인 석물(코끼리낙타 등)을 배치한 것은 조선 묘제 사상 전무후무한 독창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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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의 능침 주변에 병풍석(12)을 두르고 꽃무늬를 새겼으나 난간 밖으로 두르던 둘레돌이나 양석호석 등은 생략하였으며, 기존 왕릉에서 능침 주변에 배치하던 문석인무석인동물 석상들을 홍살문에서 침전으로 이어지는 향로와 어로 좌우로 전진 배치하였다.

 

홍릉에는 능침의 호석(護石)인 양석(羊石)호석(虎石) 대신 능침 앞에서부터 홍살문까지 기린코끼리해태사자낙타말의 순으로 석수를 세웠으며, 또 문인석의 금관조복(金冠朝服)과 무인석의 성장(盛裝)이 강조되었다.

 

 

홍유릉 경내와 주변에는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뿐만 아니라 영친왕(의민황태자)덕혜옹주의친왕 등 대한제국 황실 가족들의 묘역이 집중되어 있다.

 

국권을 빼앗긴 황실 가족들이 사후에 모이게 된 이곳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픈 시기인 일제강점기와 황실의 몰락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근대사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후를 명성태황후로 추존하였으며, 당시 황후의 능은 현재 홍릉수목원 자리에 조성되었고 이때 능호가 홍릉(洪陵)으로 정해졌다.

 

1919년 고종황제가 덕수궁에서 승하하자 당시 청량리의 홍릉 자리가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천장론이 제기되었으며, 현재의 위치에 고종의 능을 새로 만들면서 청량리에 있던 명성황후의 능을 옮겨와 최종적으로 합장릉을 완성하였다.

 

 

고종(高宗)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아들로 서양 각국과 수교하며 개화정책을 펼치고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황제가 되었으며 광무개혁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고종황제는 을사늑약(1905)의 무효를 주장하기 위해 1907년에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한 사건으로 퇴위되고 덕수궁(경운궁)에 태왕(太王)으로 있다가 1919년에 사망하였으며, 일본인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이 나돌아 국장일인 31일에 거국적인 3.1운동이 일어났다.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 閔氏)는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민치록(閔致祿)의 외동딸로 8세 때 부모를 여의고 1866년에 왕비가 되었으며, 대원군과 명성왕후의 불화는 대원군이 고종의 총애를 받던 궁인 이씨 소생의 완화군(完和君)을 세자로 책봉하려 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명성황후는 쇄국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에 맞서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하는 외교정책을 펼치다가 1895(고종 32)에 경복궁에서 일본 낭인(浪人)들에게 시해 당하였다.

 

 

홍릉의 재실(齋室)은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參奉) 등이 상주하는 곳으로, 황제의 격에 맞추어 조성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조선 왕릉 재실과 비교하여 규모가 크고 건축 배치 구조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재실의 구조는 황제의 능역인 만큼 전반적으로 규모가 크고 한옥의 격식이 높으며, 중앙 재실(안채)안향청(安香廳)행랑채와 솟을대문제기고(祭器庫)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실(안채)은 제례 때 제관이 머무는 중심 건물로 격식 있는 대청마루와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향청(安香廳)은 나라에서 내려온 향과 축문을 임시로 보관하는 신성한 장소이다.

 

행랑채는 출입문 역할을 하는 솟을대문 양옆으로 길게 행각이 늘어서 있으며, 이곳에 많은 방과 마루를 두어 제사를 돕는 수행원과 관리들이 머물 수 있도록 했으며, 제기고(祭器庫)는 제사에 사용하는 제례 기구와 물품들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창고 건물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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