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 창경궁(昌慶宮)은 왕실의 웃어른을 편안히 모시기 위한 궁궐로 지었기 때문에
정치공간인 외전(外殿)보다는 생활공간인 내전(內殿)으로 더 발달했다고 한다.
창경궁은 경복궁ㆍ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조선시대 궁궐이며,
처음 이름은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대왕이 상왕(上王)인 태종을 편안히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이었다.
홍화문(弘化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창경궁의 정문이며, 동향 중층 우진각 지붕으로 보물 제384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 왼쪽인 서북쪽 모서리에 계단이 있어서 위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으며,
1484년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6년에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창경궁은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살았던 수강궁에 몇몇 전각을 보태어 세운 궁궐이며,
왕이 정사를 돌보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생활공간으로 목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비해 전각의 수가 많지 않고 규모가 아담하다.
성종(成宗)은 왕실의 웃어른이신 할머니(세조 비 정희왕후), 어머니인 덕종 비 소혜황후(인수대비),
그리고 작은 어머니인 예종 비 안순왕후 등 세분의 대비를 모시게 되면서 창덕궁 이웃에 창경궁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창경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린 것을 1616년(광해군 8년)에 다시 지었으며,
1909년(순종 3년)에는 일제에 의해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고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으며,
이후 1984년에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지금은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다.
창경궁에는 또한, 기상관측기구인 풍기대(風旗臺)와 천체 관측시설인 관천대(觀天臺),
그리고 왕족의 태반(胎盤)을 묻은 조형물인 태실(胎室) 등 조선시대의 다양한 문화재들이 많이 있다.
창경궁에는 왕들의 지극한 효심과 사랑, 왕과 세자의 애증, 그리고 왕비와 후궁의 갈등 등
왕실 가족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도 풍부하게 전해지는 궁궐이기도 하며,
장희빈과 인현왕후, 영조와 사도세자 등의 현장이 바로 창경궁이기도 하다.
춘당지(春塘池)는 창경궁(昌慶宮) 내에 있는 작은 연못으로,
일제(日帝)가 창경궁을 놀이공간으로 조성하면서 만들었으나,
1983년에 주변의 울창한 숲과 어우러진 전통 양식의 연못으로 새롭게 조성하였다고 한다.
춘당지 앞에 있는 팔각7층석탑(八角七層石塔)은 1470년(성종 원년)에 만주에서 가지고 온 것을
일제 때 창경궁(昌慶宮)에 이왕가박물관을 건립할 때 상인으로부터 구입하여 세운 탑으로,
전체 모습은 라마탑의 형태와 비슷하다고 하며 보물 제1119호이다.
창경궁 내에 있는 대온실(大溫室)은 일제가 창경궁(昌慶宮)을 동물원으로 만들면서
목재ㆍ철재ㆍ유리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며,
온실 내에는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ㆍ야생화ㆍ자생식물 등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다.
온실 내에는 꽃댕강나무꽃 등 몇몇 종류의 꽃들이 피어 있었으나,
의외로 기대했던 만큼의 꽃들이 별로 없어 아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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