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위치한 양주관아(楊州官衙)는 1506년(중종 1년)에 현재의 위치에 설치되어
1922년에 시둔면(의정부시 의정부 1동)으로 이전될 때까지 417년 동안
양주목(楊州牧)을 다스리던 관청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현재 복원된 관아의 자리는 목사(牧使)의 정청(政廳)이었던 매학당(梅鶴堂)이 있던 곳으로,
매학당은 목사가 정무를 보던 외동헌과 가족이 생활하던 내동헌으로 이루어져 있는 20여 칸 정도의 규모였다고 한다.
이곳 관아지(官衙址)는 지난 2000년부터 2017년까지 5차례에 거쳐 발굴 조사한 결과
건물지ㆍ담장지ㆍ배수시설ㆍ출입시설 등의 유구(遺構), 평기와ㆍ막새기와ㆍ명문 기와 등의 기와류,
청자ㆍ분청사기ㆍ백자 등의 자기류, 상평통보 등 금속유물 등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양주관아의 규모가 어떠하였는지는 여지도서(輿地圖書)ㆍ경기지(京畿誌)ㆍ경기읍지(京畿邑誌) 등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이중 양주목을 규모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자료는 경기읍지로 약 31개의 관아시설에 그 규모는 326여 칸이었다고 한다.
양주시는 1997년 양주목사 집무처인 동헌(매화당)의 복원을 시작으로
동행각ㆍ서행각ㆍ내삼문ㆍ외삼문ㆍ사령청ㆍ중렴성문ㆍ외렴성문 등과
목사의 관사였던 내와ㆍ내아삼문 등을 작년에 복원 완료하였다.
복원된 동헌(東軒)은 한식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3칸의 목조건물이며,
화강암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방형 기둥을 세웠으며
두공은 간결한 모양의 익공을 두 겹으로 얹은 무출목 이익공식 건물이다.
양주 관아 뒤편에 자리한 어사대 비(御射臺 碑)는 정조(正祖)가 양주 관아에 행차하여 활을 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792년(정조 16년)에 세운 사적비이다.
비(碑)는 형태만 겨우 갖춘 거북받침 위로 비신을 세운 비석으로
너비 55cm 두께 24cm 높이 136cm 등 총 186cm 높이의 간결한 구조이며, 현재 맞배지붕을 한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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