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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조선 최대 왕실 사찰이었던 회암사(檜巖寺)와 회암사지(檜巖寺址)

by kangdante 2019.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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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위치한 회암사지(檜巖寺址)는 고려 말조선 초 불교계를 이끈 고승(高僧)들이 머물던

조선 초기 최대 왕실 사찰이었지만 소실되어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회암사는 인도에서 원()를 거쳐 고려에 들어와 1326(고려 충숙왕 13)부터 1328년까지 머물렀던

지공(指空)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며, 이곳의 지형이 인도의 아라난타사(阿羅難陀寺)와 비슷하므로

가람을 이룩하면 불법(佛法)이 흥한다는 생각에서 창건한 대규모 사찰이었다고 한다.

 

 

회암사지에서는 왕실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된 용무늬기와봉황무늬기와청기와 등

당시 불교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 27만 여점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회암사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여 나옹(懶翁) 스님의 제자이자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無學大師)

회암사에 머무르게 하여 불사가 있을 때 마다 대사를 보내 참례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회암사는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난 뒤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효령대군 또한 머물렀던 적이 있었고,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13년에 걸쳐 사찰 규모를 크게 넓히기도 하였다.

 

그 후 이 사찰은 1566(명종 21)부터 1595(선조 28) 경에 불교를 배척하는 유생(儒生)들의 방화로 불타고

사세(寺勢)가 기울러져 폐사(廢寺)된 것으로 전해진다.

 

 

회암사지 부도탑은 사지(寺址)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각수법이나 전체적인 조형감으로 볼 때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나 승려의 부도인지 혹은 불탑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부도탑은 우리나라 전통적 부도형식인 팔각원당형과는 달리 기단부가 높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위의 탑신부도 매우 높고 구형(球形)을 이루고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폐사되었던 사찰은 1821년에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 등 세 승려의 부도(浮屠)와 비()를 중수하면서,

옛터에서 500m 위쪽에 작은 절을 짓고 회암사의 절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회암사 언덕위에는 무학대사 홍융탑(보물 제388)과 조선 초에 건립된 쌍사자 석등(보물 제389)무학대사비

회암사지부도탑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제387)맷돌당간지주지공스님의 부도 및 석등 등의

문화재가 다수 있다.

 

 

무학대사 홍융탑(洪融塔)은 조선 초기 최고의 부도(浮屠)로 손꼽히며, 팔각원당형으로 팔각의 지붕을 얹고

아래 몸돌에 조각을 세워 놓았으며 구름 사이로 용의 형상이 눈앞으로 튀어나올 기세다.

 

쌍사자 석등은 무학대사의 승탑 앞에 세워진 석등으로, 석등은 어둠을 밝혀준다는 조명 역할 이외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의미를 지닌 불가(佛家)의 중요한 상징물이라 한다.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은 인도 출신의 고승(高僧) 지공(指空)의 사리탑과 석등으로,

부도는 팔각원당형을 기본구조로 하고 기단부탑신부상륜부가 모두 완전하게 갖춰져 있다.

 

석등은 4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4각의 상하대석 위에 2매로 된 화사석(火舍石)을 마주 붙혀

화창(火窓)이 앞뒤 두 곳만 나 있으며,

화사석 위로는 사각의 옥개석과 옥개석 위에는 연꽃봉오리모양의 구슬장식이 되어 있다.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은 고려 후기 승려인 나옹의 묘탑(墓塔)과 석등으로,

부도는 8각을 기본으로 하는 팔각원당형으로 상하대의 기단부와 탑신부상륜부로 되어 있다.

 

석등은 4각형을 기본으로 2매로 된 상하대석 위에 화사석(火舍石)을 마주 붙혀

화창(火窓)이 앞뒤 두 곳만 나 있으며, 화사석 위로는 사각의 옥개석과 옥개석 위에는 상륜부를 가지런히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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