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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여행] 서울 가볼만한 곳(조선 궁궐)

by kangdante 2020.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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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1394년에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한 이래 500여년간 조선 왕조의 도읍지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읍지로서 긴 도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서울에는 현재 조선 왕조의 5대 궁궐인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과 고종(高宗)의 잠저(潛邸)였던 운현궁,

그리고 몇몇 왕릉(王陵)이 자리하고 있는 등 곳곳에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분포되어 있다.

 

1. 경복궁(景福宮)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정궁(正宮)에 해당하며,

경복궁(景福宮)이라는 이름은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의미로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다.

 

현재 경복궁 내에는 근정전경회루 등 국보(國寶)와 자경전근정문 등 보물(寶物)을 비롯하여,

수정전향원정사정전, 천추전집경당함화당재수각집옥재협길당 등 다양한 건물과 문화재들이 많다.

 

 

경복궁은 여러 차례 화재 피해를 겪어 이에 대한 복구가 거듭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불탄 후 270여 년간 폐허상태로 있다가 1865(고종 2)에 대규모 재건공사를 하기도 하였다.

 

근정전(勤政殿)은 조선에서 가장 큰 궁궐인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정령(政令)을 반포하였던 곳이며,

수정전(修政殿)은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이던 건물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재건되면서 건물 명칭이 바뀌었다.

 

 

경회루(慶會樓)는 외국 사신의 접대와 연회를 베풀던 누각으로,

연못을 파고 4각형의 인공섬 위에 더 크게 세워 경회루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향원정(香遠亭)은 고종(高宗)이 건청궁(乾淸宮)에 기거하던 1867년에 경회루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그 중앙에 지은 정자로,

건청궁과 향원정 사이에는 다리를 놓아 취향교라 하였다.

 

 

경복궁의 볼거리 중 하나는 매일 3(10, 13, 15)에 걸쳐 엄숙하고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왕실호위문화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는 경복궁 수문장교대의식이다(현재는 코로나로 중지)

 

교대의식 절차는 먼저 초엄()이 울리면 취타대를 앞세워 교대 수문군이 출발하며, 좌우 수문군이 중앙어도에 도착한다.

중엄이 울리면 당직 수문장과 교대수문장이 군례 및 신분확인을 한 후,

교대수문군은 수문군 배치를 위한 4줄을 만들고 광화문에 도착 한다.

교대수문군은 수문장의 호령으로 광화문에 배치되고 당직수문군은 광화문 안쪽으로 이동하며,

상엄이 울리면 당직 수문군이 수문장의 지휘 하에 퇴장한다.

 

 

2. 창덕궁(昌德宮)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 창덕궁(昌德宮)은 조선조 5대 궁궐 중 하나로,

1405(태종 5)에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본궁(本宮)에 대한 피방(避方)의 궁궐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창덕궁(昌德宮)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2층 우진각 기와지붕의 중문(重門)으로,

궁궐 정문 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이며 보물 제383호이다.

 

 

창덕궁은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政事)를 돌보던 외전(外殿)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內殿),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휴식공간으로 꾸민 후원(後苑)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덕궁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건축과 전통 정원을 잘 간직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며,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된 궁궐이다.

 

 

낙선재(樂善齋)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헌종(憲宗)의 서재 겸 사랑채였다고 한다.

 

낙선재는 원래 창경궁에 속해 있었으나 근래에 창덕궁에 속하게 되었다고 하며,

석복헌(錫福軒)수강재((壽康齋) 3개의 건물을 총칭하여 낙선재라 부르며 보물 제17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정원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창덕궁 후원(後苑) 내에 있는 부용지(芙蓉池)는 후원의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고 한다.

 

후원에는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주합루 일원의 규장각서향각 등 왕실 도서관과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한 영화당(瑛花堂),

그리고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에게 왕이 주연을 베풀고 축하해 주기도 하였다는 부용정(芙蓉亭) 등 여러 건물들이 있다.

 

 

3. 창경궁(昌慶宮)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자리한 창경궁(昌慶宮)은 경복궁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궁궐이며,

왕실의 웃어른을 편안히 모시기 위한 궁궐로 지었기 때문에 정치공간인 외전(外殿)보다는 생활공간인 내전(內殿)으로 더 발달했다고 한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은 보물 제38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문 왼쪽인 서북쪽 모서리에 계단이 있어서 위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으며

1484년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6년에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창경궁은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살았던 수강궁(壽康宮)에 몇몇 전각을 보태어 세운 궁궐이며,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비해 전각의 수가 많지 않고 규모가 아담하다.

 

 

창경궁 대온실(大溫室)은 일제가 창경궁(昌慶宮)을 동물원으로 만들면서

목재철재유리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라고 한다..

 

춘당지(春塘池)는 원래 활을 쏘고 과거를 보던 창덕궁의 춘당대 앞 넓은 터에 있던 작은 연못으로,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던 내농포(內農圃)이었다고 한다.

 

 

4. 덕수궁(德壽宮)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덕수궁(德壽宮)은 조선의 5대 궁궐 중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궁궐이며,

원래는 월산대군의 사가(私家)이던 것을 임진왜란 후 선조가 임시로 거처로 사용하면서 궁이 되었다.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었으나 고종(高宗)1907년에 순종(純宗)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에,

이곳에 머물게 되면서 고종의 장수(長壽)를 빈다는 의미로 덕수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전통 목조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함께 남아있는 구한말(舊韓末)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궁내에는 덕수궁 정전(正殿)이었던 중화전(中和殿)을 비롯하여 즉조당(卽祚堂)석어당(昔御堂)준명당(浚明堂),

그리고 서양식의 대규모 석조건물 석조전(石造殿)은 국립현대미술관(서관)과 대한제국 역사관 등이 있다.

 

즉조당(卽祚堂) 일대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거처했던 전각들을 보존한 곳으로,

즉조당은 광해군과 인조가 왕위에 오른 곳이고 석어당(昔御堂)은 선조가 거처하다 승하한 곳이며,

준명당(浚明堂)은 고종이 업무를 보던 편전으로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경복궁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일 2(오전오후) 웅장하고 절도 있는 궁중의식 중 하나인 수문장 교대의식을 만날 수 있다(현재는 코로나로 중지)

 

조선시대 수문장은 흥인지문과 숭례문 등 도성 문과 경복궁덕수궁 등 궁궐의 문을 지키는 책임자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문을 여닫고 근무교대를 통하여 국가의 중심인 국왕과 왕실을 호위하였다고 한다.

 

 

5. 경희궁(慶熙宮)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경희궁(慶熙宮)1617(광해군 9)에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경덕궁(慶德宮)으로 불렸다가 1760(영조 36)에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경희궁은 조선시대 5대 궁궐중 하나로, 처음 창건 때는 이궁(離宮)으로 지어졌으나

궁의 규모가 크고 여러 임금이 이 궁에서 정사를 보았기 때문에 동궐인 창덕궁에 대하여 서궐이라 불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경희궁은 원래 선조(宣祖)5남 정원군(定遠君)의 사저(私邸)였으나

집 근처인 색문동(塞門洞)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다는 말에 따라, 이를 눌러 없애기 위해 별궁을 짓고 경덕궁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복구된 뒤에도 경덕궁에는 여러 왕들이 머물렀고,

이따금 왕의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하는 등 인조효종철종 등 10여 명의 왕이 살았지만 그 기간이 짧았으며 거의 빈 궁궐로 있었다고 한다.

 

 

6. 운현궁(雲峴宮)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雲峴宮)은 고종(高宗)의 생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사가(私家)이며,

조선 26대 고종(高宗)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이다.

 

운현궁은 현재 운현궁의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을 비롯하여 안채인 노락당(老樂堂)이로당(二老堂) 등의 건물과

건물 내에는 그 당시 모습들을 재연한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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