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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여행] 서울 가볼만한 곳(조선 왕릉)

by kangdante 2020.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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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朝鮮王陵)은 총 42기이며 이중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가 한국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경기도에 분포되어 있지만 서울에도 태릉(泰陵)을 포함하여 8기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 왕릉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600여 년 전의 제례(祭禮)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이면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1. 태릉(泰陵)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泰陵)은 조선 제11대 중종(中宗)의 계비(繼妃)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尹氏)의 능()으로

사적 제201호이다.

 

문정왕후는 중종의 능인 정릉에 묻히고자 하여 공사를 벌였으나,

그곳은 지대가 낮고 장마철에 물이 들어오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 모셔졌다고 한다.

 

 

문정왕후는 윤지임(尹之任)의 딸이며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尹氏)가 산후병으로 승하하자 1517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인종(仁宗)이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고 명종(明宗)이 즉위하자 8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하였다.

 

이 무렵에는 인종과 명종의 외척들과의 세력다툼이 심하여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이후 1565(명종 20) 창덕궁 소덕당(昭德堂)에서 승하하였다.

 

 

2. 강릉(康陵)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강릉(康陵)은 문정왕후의 아들인 제13대 명종(明宗)과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능이며,

1575(선조 8)에 왕비릉도 왕릉과 나란히 앉혀 쌍릉(雙陵)을 이루게 하였다.

 

강릉과 태릉은 한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1965년에 태릉선수촌이 중간에 건립되면서 별도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며,

현재는 태릉강릉 내 연계된 숲길(1.8km)로 개방하고 있다.

 

 

명종은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모후인 문정왕후가 8년간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집권한 내내 '눈물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수렴청정의 그늘에서 시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인순왕후(仁順王后) 심씨는 영돈녕부사 청릉부원군 심강(沈鋼)의 딸로써 15세의 나이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44세를 일기로 창경궁 통명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3. 헌릉(獻陵)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자리한 헌릉(獻陵)은 조선 3대 태종(太宗)과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의 능으로,

같은 언덕에 무덤을 달리한 쌍릉(雙陵)으로 두 능의 아래 부분을 병풍석으로 둘러 세웠다.

 

헌릉은 전체적으로 넓은 능역과 확 트인 전경과 정자각 중심의 제향공간과 능침공간 사이의 높이 차이 등

조선 전기의 왕릉의 위엄성을 잘 드러내주는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조선왕릉 중에서 석물이 2배로 많아 완벽한 쌍릉의 형식을 띄고 있다고 한다.

 

 

4. 인릉(仁陵)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자리한 인릉(仁陵)은 조선 23대 순조(純祖)와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金氏)의 능으로,

같은 언덕에 합장한 능으로 병풍석 없이 12간의 난간석을 둘렀다.

 

인릉(仁陵)은 그 주위로 양석과 마석 각 2 상석 1 망주석 1쌍을 3면의 곡장(曲墻)으로 에워쌌으며,

문인석과 무인석의 조각은 사실적으로 새겨져 섬세하고 아름답다.

 

 

5. 의릉(懿陵)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자리한 의릉(懿陵)

비운의 왕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제20대 경종(景宗)과 그의 계비인 선의왕후(宣懿王后)가 안장되어 있는 능()이다.

 

일반적으로 조선 왕릉의 쌍릉(雙陵)은 좌우로 조성되나

의릉은 왕과 왕비의 두 봉분을 앞뒤로 배치한 동원상하봉(同原上下封) 형식으로 조성한 것이 특이하며,

이는 정혈(正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풍수지리적 이유와 자연의 지형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이유라고 한다.

 

 

경종은 장희빈으로 잘 알려진 희빈 장씨(張氏)와 숙종의 장남으로 태어나 세 살 때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717(숙종 43)3년간의 청정대리를 끝내고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1720년에 경덕궁(경희궁)에서 즉위하였다.

 

경종(景宗)의 생애는 어릴 적부터 편치 않았으며, 재위 4년 동안 신임사화(辛壬士禍) 등 당쟁이 그치지 않았고

소생 없이 병약하여 재위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6. 선릉(宣陵)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선릉(宣陵)은 조선 9대 성종(成宗)과 그의 계비(繼妃)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의 능이며,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파 헤쳐져 훼손되기도 하였다.

 

선릉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으로 봉분에는 십이지 신상이 새겨진 병풍석과 난간석이 있으며,

석실과 사대석 병풍석을 쓰지 말라는 세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성종의 능은 석실이 없으며 정현왕후의 능에는 병풍석을 만들지 않았다.

 

 

7. 정릉(靖陵)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한 정릉(靖陵)은 제11대 중종(中宗)의 능으로 선릉의 언덕너머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 제1계비 장경왕후가 묻힌 곳에 장례를 지냈는데 제2계비 문정왕후가 풍수상의 이유로 현 위치로 이장한 것이라 한다.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사이에는 약 3.5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 삼릉공원(三陵公園)이기도 하며,

왕릉이지만 시민들의 휴식 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사이에는 약 3.5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 삼릉공원(三陵公園)이기도 하며,

왕릉이지만 시민들의 휴식 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8. 정릉(貞陵)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에 자리한 정릉(貞陵)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神德王后) 강씨(康氏)의 능으로,

단릉 형식으로 능침에는 문석인석마장명등혼유석망주석석양석호를 배치하였다.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이 조성당시의 것이며 나머지 석물은 현종 대에 다시 조성하였다고 하며,

장명등은 고려시대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9. 연산군 묘(燕山君 墓)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자리한 연산군 묘(燕山君 墓)는 사적 제362호이며,

묘 왼쪽에는 부인 신씨(愼氏)가 있고 그 아래에는 궁인 조씨(宮人 趙氏)의 묘와

중종 때 정국공신인 구수영(具壽永) 내외로 추정되는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연산군은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의해 강화도 교동도로 귀양 가서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로부터 7년 후에 이곳에 이장(移葬)된 것으로 비문에 새겨져 있다.

 

 

10. 숭인원(永徽園)과 영휘원(崇仁園)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는 조선 26대 고종(高宗)의 후궁이며 의민태자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무덤인 영휘원(永徽園)

조선 마지막 황태자 의민황태자의 아들 이진(李晉)의 무덤인 숭인원(崇仁園)이 있다.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 엄씨는 명성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시해된 후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며,

신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근대 사학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이진(李晉)은 일본에서 태어나 의민태자 내외가 귀국하였을 때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후,

순종황제의 명에 의해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이란 왕의 사친(私親) 또는 왕세자와 그 빈()의 무덤을 일컫는 말로,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추존왕들의 무덤을 총칭하는 능()과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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