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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왕을 보살핀 은혜의 보답으로 창건한 진관사(津寬寺)

by kangdante 202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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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의 북한산(北漢山) 기슭에 자리한 진관사(津寬寺)

1011(고려 현종 2)에 현종(顯宗)이 승려 진관대사(津寬大師)를 위하여 창건한 천년 고찰이라고 한다.

.

한편으로는 조선 후기 승려 성능(聖能)이 찬술한 북한지(北漢誌)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진관대사와 더불어 삼천사(三川寺)와 함께 세웠다는 설도 전해지지만 시대 차이가 많이 나므로 믿기 어렵다고 한다.

 

 

진관사는 동쪽의 불암사남쪽의 삼막사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쪽의 진관사로

서울 근교의 4대 명찰(名刹)로 손꼽힌 이름난 사찰이었다고 한다.

 

진관사 경내에는 대웅전나한전독성전칠성각 등의 건물과 약사여래불석탑,

그리고 칠성각 보수작업 도중에 오래된 태극기와 1919년의 독립신문신대한신문조선독립신문자유신종보 등

십 수점의 항일신문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진관사는 임금을 보살핀 은혜로운 곳이라 하여

여러 임금이 왕래하면서 왕실의 각별한 보호와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수도를 서울로 옮기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고 한다.

 

진관사는 그 후 6.25전쟁 때 공비소탕작전으로 소실되고

나한전(羅漢殿)칠성각(七星閣)독성전(獨聖殿) 3동의 불전(佛殿)만 남았으며,

칠성각과 독성전은 2009년에 전면적으로 보수하였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한경지략(漢京識略)에 의한 창건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 목종(穆宗)은 후사가 없는 관계로 태조 왕건의 8남 왕욱(王旭)과 헌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대량원군(大良院君, 현종)

왕위 계승자로 물망에 올랐다.

 

목종(穆宗)의 생모이면서 경종(景宗)의 왕비였던 천추태후(헌애왕후)

파계승 김치양(金致陽)과 사이에서 나은 자신의 아들을 옹립하기 위해 대량원군을 죽이려 하였으며,

천추태후는 대량원군을 숭경사(崇慶寺)에 가두고 죽일 틈을 엿보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삼각산 신혈사(神穴寺)로 옮기도록 하였다.

 

 

신혈사는 진관(津寬)이 혼자서 수도하는 곳으로 살해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이 사실을 눈치 챈 진관이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지하굴을 파서

열두 살인 대랑원군을 숨겨 천추태후가 보낸 자객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3년 뒤 목종이 죽자 대랑원군은 개경으로 돌아가 현종이 되었고,

1011년에 진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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