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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조선 최초 왕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능, 정릉(貞陵)

by kangdante 2021.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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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자리한 정릉(貞陵)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繼妃)인 조선 최초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능이다.

 

정릉은 처음에는 황화방(皇華坊) 북원(北原: 현 중구 정동)에 위치하였으나

중국사신이 머무는 태평관이 가깝다는 의정부의 상소를 받아들여

태종(太宗)의 명에 의해 지금의 장소인 사을한리(沙乙閑里)로 천릉(遷陵)하였다.

 

 

정릉은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參道)''자로 꺾여 있어 일반적인 조선왕릉과는 차이를 보인다.

 

신덕왕후는 고려의 권문세가 판삼사사 강윤성(康允成)의 딸로

태조가 집권할 당시 거사에 참여하여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조선이 개국되자 1392년에 현비(顯妃)로 책봉되고 소생으로 방번(芳蕃)방원(芳碩)과 경순공주를 두었으며

1396(태조 5)에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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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은 태종이 즉위하면서 푸대접을 받았는데,

태종은 능을 옮긴 지 한 달이 지난 후에 봉분(封墳)을 깎아 버리고 정자각을 헐어 내었으며 석물(石物)들을 모두 땅에 묻도록 하였다.

 

그 해 여름에 폭우로 광교가 무너지자 병풍석12신상(神象) 등의 석물을 실어다가 돌다리를 만들게 하였고

그 밖의 석재나 목재들은 태평관을 건립할 때 부속재로 사용하였다.

 

 

이로부터 정릉은 돌보는 이가 없자 능침이 황폐화되어 아무도 신덕왕후의 능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170년이 지난 선조 때 신덕왕후의 후손인 강순일(康純一)

군역 면제의 혜택을 받고자 조정에 소청한 것을 계기로 조정에서 정릉을 찾기 시작하였다.

 

마침 태종 때 변계량(卞季良)이 하늘에 제사 지낸 제문(祭文)에서 정릉에 관한 구절을 찾아 정릉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초라한 정릉의 능침을 가꾸고 한식날 제사만 드리게 하였다.

 

 

신덕왕후 강씨는 종묘(宗廟)에 부묘하지 않아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으나

조선 후기 1669(현종 10)에 이르러 송시열의 계청(啓請)으로 200여년 만에 종묘에 배향하고 능묘로 받들게 되었다.

 

 

재실(齋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陵參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정릉 재실은 2012년에 조사발굴하여 2014년에 복원하였으며,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齋室),

제기를 보관하던 제기고(祭器庫)와 그 밖에 부속공간인 행랑(行廊)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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