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자리한 한규설(韓圭卨) 고택(古宅)은
조선말 의정부 참정대신(參政大臣)을 지낸 한규설(韓圭卨) 대감이 살던 고택(古宅)으로,
19세기 서울지역 전통 양반가옥의 특성을 잘 보존하고 있다.
원래 건물은 1890년대 이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장교동에 있었던 건물을 국민대학교에서 기증받아 교내로 옮겨지었으며,
현 위치로 옮겨오면서 없어졌던 솟을대문ㆍ좌우 행랑채 등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장교동의 원래 고택은 99칸의 큰 집이었다고 하며,
국민대학교의 위치가 산 중턱이라 일부만 옮겨 놓았다고 한다.
건물 안채는 ㄴ자형으로 앞면 6칸 옆면 2칸의 규모이고,
사랑채는 ㄱ자형의 앞면 4칸 옆면 2칸 반이고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별채는 ㄱ자형으로 광채와 연결되어 있으며, 사당은 일반적인 규모보다 약간 작게 지었다.
한규설(韓圭卨) 고택(古宅)은 국민대학교에서 소유주로부터 기증받아
1980년에 현 위치에 원형 그대로 이전ㆍ복원하여 명원민속관으로 명명하였으며,
현재는 전통 다도(茶道)의 보급과 학생들의 생활교육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고택 건물은 화강석 기단과 6각 초석 위에 기둥을 세웠으며
사랑채ㆍ안채ㆍ뒷채의 마루는 모두 우물마루이며 대부분의 창호는 현대식으로 개조하였으며,
학생들의 예절 교육관으로 쓰고 있으며 외부 손님의 교내 탐방코스와 다도수업 등에 쓴다고 한다.
한규설(韓圭卨)은 조선 말기의 무신(武臣)으로 을사조약 당시 참정대신(參政大臣)을 지냈던 인물이며,
일본이 을사조약 체결을 강요하자 탁지대신(度支大臣) 이용익(李容翊)과 함께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인물 중 한명이라고 한다.
한규설은 을사조약을 끝까지 반대하다 파면되어 수옥헌(중명전) 골방에 감금되기도 하였으며,
1920년에는 월남 이상재 등과 함께 조선교육회를 창설하여 민립대학기성회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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