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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단청 없는 소박한 궁궐 건물, 창덕궁 낙선재(樂善齋)

by kangdante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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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와룡동의 창덕궁 내에 있는 낙선재(樂善齋)1847(헌종 13)에 지은 건물로

헌종(憲宗)의 서재 겸 사랑채였다고 하며,

원래 창경궁에 속해 있었으나 근래에 창덕궁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낙선재(樂善齋)는 단청(丹靑)을 하지 않은 소박한 궁궐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 기와지붕이며,

보물 제17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락문(長樂門)은 낙선재의 정문으로 이 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뒤로 낙선재가 있으며,

집 뒤로는 큰 석재로 쌓아 만든 화계(花階)가 있으며 굴뚝과 각 단의 꽃나무들이 조화를 이루며 조원(造園)이 조성되어 있다.

 

낙선재는 또한 상중(喪中)에 있는 후궁(後宮)들이 거처하던 건물이기도 하였으며.

상중에 근신하는 후궁들이 소박한 건물에서 예를 갖추는 법도를 지키도록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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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樂善)선을 즐긴다라는 의미이며,

맹자에 나온 인의(仁義)와 충신(忠信)으로 선을 즐겨(樂善) 게으르지 않는 것(不倦)을 천작(天爵)이라고 한다.’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낙선재는 외국문물에 대한 왕의 기호를 반영하듯

낙선재의 창살 무늬와 상량정(上凉亭)의 건축 양식 등에서 청나라 양식이 보이기도 한다.

  

 

헌종은 자신과 효정왕후(孝定王后) 사이에 자식이 없자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고

경빈 김씨를 낙선재 바로 옆의 석복헌(錫福軒)에 처소를 마련하였다.

 

수강재(壽康齋)는 어린 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이 끝난 순원왕후(純元王后)를 모신 곳이었으며,

수강재도 낙선재 영역으로 편입시켜 석복헌(錫福軒)수강재(壽康齋) 3개의 건물을 총칭하여 낙선재라 부르게 되었다.

 

 

낙선재는 고종황제와 순종황제가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 그리고 덕혜옹주 역시 어려운 삶을 보내다 1962년 낙선재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사망하는 등

황족들이 마지막으로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낙선재는 근래까지 대한제국의 황실 가족들이 실제 살았으나 조선시대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으며,

1990년대 들어서 낙선재의 증축한 부분들을 철거하고 조선시대 모습대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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