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자리한 초지진(草芝鎭)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1656년(효종 7년)에 설치한 요새이며, 안산의 초지량에 수군의 만호영(萬戶營)이 있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안산에 있던 초지량영은 1666년에 강화로 옮겨 진(鎭)으로 승격시켰으며,
진에는 배 3척을 비롯하여 초지돈ㆍ장자평돈ㆍ섬암돈의 세 군데 돈대(墩臺)를 거느리고 있었다.
초지진은 병인양호ㆍ신미양호ㆍ운양호 사건 등으로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에 초지돈을 복원하였으며,
현재 타원형의 돈대에는 포좌 3개ㆍ총좌 100여개 그리고 실제 조선시대 말기에 사용하였던 대포 1문이 전시되어 있다
초지진은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복원된 성축과 홀로 남은 노송(老松)에는 당시의 포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대포(大砲)는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 화포이며,
영조 때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대포의 중량은 1,800kg 길이 215cm 구경 100m/m 사정거리는 700m이며,
화약이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나 포탄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하다고 한다.
초지진에는 프랑스의 극동함대 로즈(Roze) 사령관이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1866년(고종3년)에 강화도를 침입하여 병인양요(丙寅洋撓)가 일어났다.
미국의 로저스(Rodgers) 아시아 함대는 통상(通商)을 강요하며
1871년 4월에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여 450명의 육전대(陸戰隊)가 초지진에 상륙전을 감행하여
신미양요(辛未洋撓)가 발생하였으며,
이때 군기고ㆍ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고 한다.
일본은 조선을 무력으로 개항시키기 위해 1876년(고종 13년)에 일본군함 운양호(雲揚號)로 침공하였으며,
그 결과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의 체결을 가져옴으로써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기도 하였다.
침략 당시 프랑스ㆍ미국ㆍ일본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나
조선군은 사거리도 짧고 정조준도 잘 안되는 열세한 무기들로 싸웠다고 한다.
초지진 성곽 앞에 있는 400년 수령(樹齡)의 소나무는 굵은 줄기가 솟구쳐 여러 갈래로 뻗은 모양으로
가지가 늘어지면서 삿갓모양으로 처져 아름다운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생물학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소나무는 1656년 강화유수 홍중보가 초지진을 설치할 때 선비의 기상과 지조를 상징하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지며,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의 함포사격으로 일부 파괴되었고 포탄 파편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초지진에서 바로 전방에 바라보이는 초지대교(草芝大橋)는 길이 720m 왕복 4차선의 섬과 내륙을 잇는 연륙교로
김포와 강화도를 있는 교량이다.
초지대교는 1998년 개통된 강화대교에 이어 강화도와 육지를 잇는 연륙교이며,
다리 아래로 배가 지나다닐 수 있는 아치형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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