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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 건릉(健陵)

by kangdante 2022.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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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자리한 건릉(健陵)은 정조(正祖)와 효의왕후(孝懿王后)의 동릉이실(同陵異室) 합장릉이며,

병풍석 없이 난간만 두르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융릉(隆陵)의 예를 따랐다.

 

건릉은 원래 생부인 장헌세자(莊獻世子)의 현릉원 동쪽에 능을 조성하였던 것을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1821년에 현재의 위치에 이장하여 효의왕후를 합장하였다.

 

 

건릉은 합장릉이지만 혼유석(魂遊石) 1좌만 놓았고 장명등(長明燈)을 세웠으며,

문무석의 조각이 사실적이고 안정감이 있는 빼어난 작품으로

19세기 능석물제도(陵石物制度)의 새로운 표본을 세웠다고 한다.

 

건릉은 동ㆍ서3면에 곡장(曲墻)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석물은 난간석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4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으며

봉분 앞에는 상석망주석과 장명등문인석과 무인석석마들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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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은 신문홍살문에서 제향을 지내는 정자모양의 정자각까지 신도와 어도로 구분하고

정자각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박석(薄石)을 깔았다.

 

건릉은 다른 능과 달리 신도와 어도 사이에 박석(薄石)이 넓게 포장되어 있는 것은

두 왕이 고종 때 황제로 추존되면서 능제가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정조(正祖)는 추존 장조(莊祖)의 아들로 1759(영조 35)에 세손에 책봉되었으며,

1775(영조 51)에는 연로한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 청정을 하였고

1762년 사도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하자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추존)의 후사가 되어 1776년에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정조는 곧바로 어머니 혜빈을 혜경궁으로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효장묘를 영릉으로 격을 높이고

생부의 존호를 장헌세자로 하였으며,

아버지 사도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기에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재정비하기 위하여

영조의 탕평정책을 계승하였고 왕실 도서관 규장각을 설치하고 새로운 개혁정치를 펼쳤다.

 

 

효의왕후(孝懿王后) 김씨는 청원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1762(영조38)에 세손빈으로 책봉되어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으며 1821(순조21)에 창경궁에서 승하하였다.

 

효의왕후는 생전에 검소하게 지내어 순조(純祖)가 잘 모셨다고 하며,

1899(광무 3)에 효의선황후(孝懿宣皇后)로 추존되었다.

 

 

재실(齋室)은 제례에 앞서 제관(祭官)들이 미리 도착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평소에는 참봉(參奉) 등 관리가 상주하여 능역을 돌본다.

 

재실의 주요시설로는 재실 외에 향을 보관하는 안향청(安香廳), 제례업무를 주관하는 전사청(典祀廳),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행랑채 등이 있으며 단청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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