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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사도세자 장조와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의 능, 융릉(隆陵)

by kangdante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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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자리한 융릉(隆陵)은 사후 왕으로 추존된 장조((莊祖)

그의 비()인 혜경궁 홍씨 헌경왕후(獻敬王后)의 합장릉으로 사적 제206호이다.

 

장조의 무덤은 원래 경기도 양주의 배봉산(서울 휘경동) 아래에 있었는데

정조가 수원화산으로 이장하면서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고, 장조로 추존된 후에는 능호를 융릉(隆陵)으로 높였다.

 

 

장조는 1735(영조 11)에 창경궁에서 태어나 그 이듬해에 세자에 책봉되었고

1749(영조 25) 부왕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다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노론들과 정순왕후 등의 무고에 의해 1762(영조 38)에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세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고 묘호를 수은묘(垂恩廟)라 하였으며,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으로 추존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장조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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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은 합장릉으로 동3면에 곡장을 두르고 봉분은 모란과 연화문을 새긴 병풍석을 둘렀으며,

난간석은 생략되었지만 방위표시를 위해 병풍석 위에 꽃봉오리 모양의 인석(引石)에 문자를 새겨 넣었다.

 

봉분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2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으며,

봉분 앞에는 상석망주석과 장명등문인석과 무인석석마들을 배치하였다.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는 이복형인 효장세자(추존 진종)가 요절하고

영조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태어난 두 번째 왕자이다.

 

영조는 즉시 왕자를 중전의 양자로 들이고 원자로 삼아 다음 해에 왕세자로 책봉하였으며,

이는 원자(元子) 정호(定號)와 세자 책봉 모두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고 한다.

 

 

헌경왕후(獻敬王后)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1744(영조 20)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장조가 세상을 떠난 후 정조 즉위년에 궁호를 혜경(惠慶)으로 올렸고 후에 헌경왕후로 추존되었다.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는 남편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한 많은 일생을 자서전적인 사소설체로 적은 한중록(閑中錄)을 남겨 궁중문학의 효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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