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화의 최초 키스신은 정확한가는 몰라도 아마도 신성일ㆍ엄앵란 주연의 ‘총각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954년에 상영된 ‘운명의 손’에서 입맞춤 장면이 있다고 하나 필자 기억으로는 그렇다.
영화 ‘총각김치’에서 키스신이라 해도 지금처럼 업 샷(Up Shot)이나 클로즈업 샷(Close Up Shot)을 이용한 노골적인 키스장면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롱 샷(Long Shot)으로 하였던 것으로 기억 되며 그때가 1960년대 중반 영화이니 어느 듯 50~60여 년 전의 일이다.
영화에서 키스신마저 이처럼 조심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영화 ‘쌍화점’에서는 남녀(男女)가 아닌 남남(男男)의 격정적 키스신을 클로즈업 샷으로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아마도 우리 영화의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 극장가에서 한때는 ‘애마부인’ 등 애로영화가 인기몰이를 한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애로영화보다는 스릴러나 폭력적인 영화가 더 인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쌍화점’에서는 ‘색,계’나 ‘미인도’ 이상의 파격적인 섹스신이 여러 장면에서 연출되고 있으며, 특히 게이를 연상케 하는 왕(주진모)과 홍림(조인성)의 격정적 키스신을 비롯하여 홍림과 왕후(송지효) 마저도 처음 섹스를 나누는 사람들치고는 지나치게 다양한 체위를 시도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133분이라는 짧지 않은 영화 상영시간에서 제법 긴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 섹스신 노출을 보면서 18금 영화이기는 하지만 애로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을 너무 의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영화 ‘쌍화점’은 자유분방한 남녀의 사랑을 묘사한 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과 고려말 공민왕(또는 충렬왕)과 자제위(子弟衛)에 얽힌 고려 비사(秘史)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하였다기보다는 오히려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섹스에 탐닉(耽溺)하게 된다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면도 있고,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기구한 운명의 남자가 여자가 아닌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자신의 여자에게 사랑을 빼앗겨야 하는 배신과 분노에 대한 아픔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겠다.
또 한편으로는, 충성이 되었던 사랑이 되었던 왕에 대한 일념뿐이었던 남자가 왕의 여자를 알고 나서부터 겪게 되는 육체적 쾌감, 그리고 그녀를 몰래 만나는 것을 숨겨야 하는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번뇌하는 남자의 복잡한 심리적 묘사가 빛을 발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들 주인공들의 아픔은 그들의 짧은 대사에서도 바로 엿볼 수 있다.
왕의 총애를 배신한 자책감에 빠져 다시는 왕후를 만나지 않으려는 홍림을 향해 “내일 자시에 다시 오겠다!” 는 왕후의 애절함이 그렇고, 왕의 부름도 잊은 채 왕후와 지난밤을 지내고 온 홍림에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는 왕의 애달픈 눈빛에서 그 아픔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대리 합궁으로 인해 주체할 수 없는 쾌락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배신할 수밖에 없는 왕을 향해 “왜 하필 저를 택하셨습니까?” 라고 울부짖는 홍림이 또한 그렇다.
이 영화는 또한, 영화 ‘신기전’에서도 그러하였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나라가 약소국으로 겪어야 했던 지난 역사에 대한 아픔이 마음 한 켠(편)에 전해진다.
왕비를 원(元)의 여자로 정략 결혼시킨 것도 모자라 후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왕위에서 끌어내리려는 횡포, 그리고 그보다 더 미운 것은 자신의 야욕과 영달을 위해 부화뇌동(附和雷同)하며 이를 이용하려는 대신들을 보면서 개인이든 국가든 힘이 있어야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
사족(蛇足)
주진모와 조인성의 캐릭터를 서로 바꿨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남성다운 출중한 무술 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홍림을 향한 부드러운 마음과 애틋한 손길, 그리고 거문고를 즐기는 여성스러움을 동시에 지닌 가련한 왕의 캐릭터라면 오히려 ‘비열한 거리’에서처럼 조인성에게 어울리는 캐릭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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