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영화의 재미라면 아무래도 관객을 압도하는 숨 막히는 긴장감과 스피드 한 전개, 그리고 잠시도 시선을 땔 수 없을 만큼 스릴 넘치는 액션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관객을 영화 속에 몰입하게 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액션스릴러ㆍ범죄스릴러ㆍ호러스릴러ㆍ심리스릴러 등 그 유형 또한 다양하다보니 제각각의 취향에 따라 골라보는 재미도 있다.
연쇄살인범의 섬뜩한 살인과 그를 쫓는 추격자의 집념을 그린 ‘추격자’라든지, 납치범과 변호사의 한판 승부였던 ‘세븐데이즈’, 그리고 보험회사 직원과 사이코패스를 다룬 ‘검은 집’ 등이 흥행에 성공한 것을 보면 우리 관객들은 범죄스릴러에 심리스릴러를 가미한 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속성상 심리게임을 좋아하고 현실에서 떨쳐버리지 못하는 울분을 범죄스릴러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게하는 매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 ‘핸드폰’은 핸드폰을 잃어버린 자가 핸드폰을 돌려받기 위해 핸드폰을 주운 자와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을 그린 스릴러영화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액션스릴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 다양한 사회에서 이기적인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기막힌 이야기를 그린 심리스릴러 영화라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또한, 가정에서나 인간관계에서 대화가 단절된 현대사회의 고독한 인간들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대화가 단절된 사회에서는 처음엔 하찮고 사소한 사건이지만,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이고 엄청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기도 한다.
핸드폰 분실이라는 영화 소재는 어찌 보면 영화의 소재치고는 너무 하찮고 단순한 일상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동통신 가입자가 7천만 명을 넘었고 연간 150만 건 이상의 핸드폰 분실이 있다는 통계수치가 말해주 듯,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으며 또한 누구나 분실할 수 있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소재를 대상으로 하였다.
이처럼 단순한 일상적 소재를 김한민 감독은 오히려 분실된 핸드폰을 되찾기 위해 두 사람 간에 밀고 당기는 심리전 양상을 스릴 넘치게 전개함으로써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극히 개인적 사생활이 담겨있는 핸드폰의 분실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대중에게 노출시키게 되어 살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한 상황이 될 수도 있기에 더욱 그렇다.
신인 여배우(이세나)의 매니저인 오승민(엄태웅)은 어느 날 카페에서 연예기획사와 계약관계를 통화하다 핸드폰을 탁자가 두고 나오는 실수를 하게 된다.
그 핸드폰에는 오승민을 협박하기 위해 장윤호(김남길)가 영상메시지로 보낸 이세나의 섹스 동영상 내용이 그대로 저장되어 있어, 이 동영상이 유포될 경우 청순한 이미지로 막 뜨기 시작하는 그녀에게는 하루아침에 몰락할 수 있는 치명적 내용일 수밖에 없기에 오승민은 안절부절 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한편, 핸드폰을 우연히 습득한 정이규(박용우)는 휴대폰을 돌려주기 위해 단축번호 1번을 눌러 휴대폰을 돌려주려 하였으나 전화를 받은 오승민의 아내 김정연(박솔미)은 남편의 사무실 전화를 알려주며 남편에게 돌려줄 것을 부탁한다.
여기까지는 우리 일상에서 얼마든지 일어 날 수 있는 일들이므로 상황은 의외로 싱겁게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주요 고객들의 전화번호와 동영상 등 이런저런 이유로 휴대폰 정지신청도 못한 채 화가 날대로 난 오승민은 휴대폰을 돌려주겠다는 정이규의 전화를 신경질적으로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휴대폰을 돌려주려고 전화를 하였는데 무턱대고 화부터 내는 그를 보자 정이규 역시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 영화는 하찮은 실수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며, 인간이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는가를 보여준다.
우선, 두 사람이 처해있는 현실을 살펴보면, 대형 마트사 고객담당 주임인 정이규는 가정적으로는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의 병치레를 해야 하고, 직장에서는 하루에도 수차례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들에게 시달리면서도 겉으로는 웃어야 하는 피 말리는 역할에 이제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태이다.
고객으로부터 성추행 당한 여점원이 분을 이기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지만 정작 큰소리치는 고객에게는 미안하다며 오히려 사과해야 하는 처지이고, 한참을 사용하다 구입한 물건에 하자가 있다고 억지를 부리며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에게 어이없어 하는 직원에게는 환불을 지시하는 등 겉으로는 ‘고객은 왕이다’를 외치며 속으로만 울분을 삭히는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메너저 오승민의 상황은 더욱 더 난감하다. 그동안 변변한 배우를 배출하지 못해 사채업자 빚에 시달리는 오승민은 자신의 가정마저 팽개친 채, 오직 이세나의 성공만을 위해 밤마다 PD와 광고주와의 술자리를 마련하여 온갖 재롱을 떤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천신만고 끝에 이제 곧 계약이 성사될 즈음인데 핸드폰 분실 하나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므로 어떻게 해서라도 핸드폰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이들 두 사람은 몰릴 대로 몰린 최악의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밀고 당기는 필사의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재미는 역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두 사람의 심리전이라 할 수 있다.
핸드폰을 찾지 못하면 파멸할 수밖에 없기에 반드시 핸드폰을 찾아야 하는 자와 지칠대로 지친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잠시 도피하고 싶은 핸드폰을 주은 자간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은 잠시도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또한, 가끔 두 사람의 긴박함을 누그러뜨리게라도 하는 듯 양념처럼 선보인 위치 추적자들이 내뱉는 코믹한 어투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약간 길다고 할 수 있는 137분의 상영시간이었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라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핸드폰을 돌려주지 않는 이유가 너무 설득력이 없다는 점이다. “글쎄!... 내가 정말 원하는게 뭘까?..” 라는 정이규의 독백처럼..
물론 처음엔 돌려주려고 했는데 전화를 너무 신경질적으로 받아 오기가 생겨서 라고 할 수도 있겠고,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오승민을 잠시 이용하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또한, 김정연의 목소리가 너무 이뻐서 그녀를 만나 돌려주려고 했는데 남편에게 돌려주라고 해서 기분이 상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 모두는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 하겠다.
특히, 휴대폰을 돌려받기 위해 위치추적까지 사용한 올림픽공원에서의 해프닝은 다소 어설펐다는 느낌(영화의 재미라는 부분에서는 괜찮은 설정이기도 하겠지만)이고, 그 후에도 마트에서 행패부린 고객의 자동차를 박살내게 하는 등 그런저런 그의 요구를 수없이 들어주었음에도 휴대폰을 돌려주지 않고 집에까지 찾아가서 김정연을 협박하는 상태까지는 아무리 양보를 해도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끌고 가기 위한 억지로 보이며 설득력이 부족하다 하겠다.
또한 핸드폰을 돌려받기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해야했던 오승민 역시 문제가 되었던 동영상이 장윤호에 의해 이미 인터넷에 유포된 관계로 이제 미련 없이 핸드폰을 포기하면 되는 것을 무리하게 끝까지 돌려받으려 하는 것은 아무리 양보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또한 인간의 속성상 정이규처럼 오기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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