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서울

조선궁궐 중 유일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昌德宮)

by kangdante 2023. 2. 7.
728x90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자리한 창덕궁(昌德宮)은 건축과 전통 정원을 잘 간직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며,

조선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궁궐이다.

 

창덕궁은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政事)를 돌보던 외전(外殿)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內殿),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휴식공간으로 꾸민 후원(後苑)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덕궁(昌德宮)의 정문 돈화문(敦化門)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昌德宮)의 정문으로 2층 우진각 기와지붕의 중문(重門)이며,

궁궐 정문 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으로 보물 제383호이다.

 

돈화문이 처음 건립된 것은 1412(태종 12)이었으나,

1450년에 개구(改構)하고 임진왜란 때 소진(消盡)되었다가 현재 건물은 광해군 원년에 재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궐내 각사(闕內 各司)

 

궐내 각사(闕內 各司)는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궁궐 안에 설치된 것을 말하며,

홍문관내의원규장각검서청예문관 등이 중심 시설이었다.

 

궐내 각사는 여러 관청들이 밀접 되면서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었으며,

대부분의 건물들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728x90

 

 

창덕궁은 1405(태종 5)에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경복궁(景福宮)에 대한 피방(避方)의 궁궐로 건립하였다고 하며,

법궁(法宮)인 경복궁(景福宮)보다 왕들이 머문 기간이 더 길었다고 한다.

 

창덕궁은 광해군 때부터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며, 화재로 인해 몇 차례 중건과정을 거쳤고

일제강점기에 궁궐의 변형을 거치기도 하였으며 동쪽에 자리 잡은 궁궐이라 하여 창경궁과 함께 동궐(東闕)로 불렸다.

 

내병조(內兵曹)

 

내병조(內兵曹)궁궐 안에 있는 병조라는 뜻으로 대궐 안 각 문의 자물쇠를 관리하고

왕이 행차할 때 왕이 탄 가마를 선도하며, 시위나 의장 때 질서를 바로 잡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내병조는 1999년에 복원되었으며 현재는 창덕궁관리사무소로 사용하고 있어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인정전(仁政殿

 

창덕궁에는 정전(正殿)인 인정전(仁政殿, 국보 제225)을 비롯하여 인정문(보물 제813)돈화문(보물 제383)

선정전(보물 제814)희정당(보물 제815)대조전(보물 제816) 등 국보급 문화재들이 많다.

 

인정전(仁政殿)은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사신 접견 등 나라의 공식행사를 치르던 곳이며,

1908년에 내부공사를 하면서 커튼전등 설치 등 실내장식을 서양식으로 도입하였다고 한다.

 

선정전(宣政殿) 일원

 

선정전(宣政殿)은 궁궐의 사무공간으로 왕이 평상시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편전이며,

아침의 조정회의업무보고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다고 한다.

 

희정당(熙政堂) 일원

 

희정당(熙政堂)은 침전에서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으로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원래의 희정당은 여러 개의 돌기둥 위에 세운 아담한 집이었고 마당에 연못도 있었다고 한다.

 

희정당의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연산 2)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창덕궁에서 즉위한 왕으로 효종현종숙종영조순조철종고종 등이 있으며,

역대 국왕 중 이곳에서 탄생하고 승하한 왕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창덕궁은 경복궁창경궁과 더불어 임진왜란으로 1592년에 모두 소실되었으나

1610(광해 2)에 제일 먼저 다시 지었으며,

인조반정(1623)으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는 등 몇 차례의 소실과 중건이 있었으나

그 뒤로 조선왕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정궁(正宮)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정각(誠正閣) 일원

 

성정각(誠正閣) 일원은 왕세자의 거처이며,

정면에 보춘정(報春亭)이라는 편액과 측면에는 희우루(喜雨樓)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2층 누각과 연결되어 있다.

 

이 누각은 세자가 공부하다 머리를 식히는 곳이었다고 하며,

보춘정(報春亭)은 홍매화가 봄을 제일 먼저 알린다는 뜻이고

희우루(喜雨樓)는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반가운 비라는 뜻이라고 한다.

 

승화루(承華樓)

 

승화루(承華樓)는 장방형의 2층 누각 형태이며,

세자를 위한 공간인 중희당(重熙堂)의 부속 건물로서 바로 옆에 위치한 삼삼와(三三窩)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낙선재(樂善齋) 일원

 

낙선재(樂善齋)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궁궐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헌종(憲宗)의 서재 겸 사랑채였다고 한다.

 

낙선재는 원래 창경궁에 속해 있었으나 근래에 창덕궁에 속하게 되었다고 하며,

석복헌(錫福軒)수강재((壽康齋) 3개의 건물을 총칭하여 낙선재라 부르며 보물 제1759호로 지정되어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