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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강원도

조선시대 상류층 사대부 전통가옥, 강릉 선교장(船橋莊)

by kangdante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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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한 선교장(船橋莊)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가옥을 대표하는 사대부 가옥이며,

아름다운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이라고 한다.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은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었을 때

'배타고 건너는 마을'이라 하여 동네이름을 배다리 마을(船橋里)이라 불렀으며,

그 이름을 따서 선교장이란 이름이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선교장은 활래정(活來亭)을 비롯하여 안채사랑채동별당서별당정자행랑채 등을 골고루 갖춘 큰 가옥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선교장 문 밖에는 수백평의 연못 위에 세워진 활래정이라는 정자까지 갖춘 완벽한 구조를 보여 주고 있으며,

건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주거생활과 생활용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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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장은 총건평1,051.24m² 규모로 1703년에 효령대군의 후손인 이내번(李乃蕃)

족제비 무리의 안내로 길지(吉地)를 발견하고 명당자리에 집을 지은 후, 그 후손이 지금도 살고 있다고 한다.

 

입향 초기에는 안채주옥을 짓고 기거하였으나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조선의 풍류시인과 묵객들이

구름같이 찾아오므로 100여 년 동안 꾸준히 건물을 증축하였으며,

1816년에 활래정과 연못을 만들어 오늘의 선교장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활래정(活來亭)

 

활래정(活來亭)은 선교장 정원에 조성한 인공연못 위에 세운 정자이며,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자형 건물이며,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고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 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연지와 함께 못 가운데 만든 섬은 신선계를 상징하며, 활래정(活來亭) 이름은

주자의 관서유감(觀書有感)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의 위유두원활수래(爲有頭源活水來)’ 에서 땄다고 한다.

 

동별당 ( 東別堂 )

 

동별당(東別堂)은 안채와 연결된 주인 전용의 별당 건물로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자형 건물이며,

집안의 잔치나 손님 맞이네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동쪽에 2개 서쪽에 1 개의 온돌방을 만들고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를, 뒷면과 동쪽은 좁은 툇마루를 돌렸으며,

현재는 선교장 장주의 거처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안채주옥(內堂主屋)

 

안채주옥(內堂主屋)1703년에 최초로 지어진 건물로 선교장 종부(안방마님)의 거처이며,

직계 여인들이 함께 이 곳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사당은 선교장 집안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이곳은 외부의 관람이 통제된 곳이다.

 

서별당(명품 고택)

 

서별당(명품 고택)은 이씨가의 서고 겸 공부방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며,

살림을 맏며느리에게 물려준 할머니의 거처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중사랑

중사랑은 선교장 손님맞이에 주로 사용된 건물이며, 전국의 학자 풍류객들과 교분을 나누던 곳이라고 한다.

 

열화당(悅話堂)

 

열화당(悅話堂)은 남주인 전용의 사랑채로서 이내번의 손자 후가 1815(순조15)에 건립하였으며,

열화당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에서 따왔다고 한다.

 

열화당은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형식의 건물로 운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현재 오르간을 설치하여 선교장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행랑이 줄처럼 서 있다 하여 줄행랑이라 부른 행랑채

 

선교장 집사 또는 하인들의 거처로 사용된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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