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의 최근 단골 소재를 보면 변호사나 검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수년전만 하더라도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법 많았던 것 같으며, 비교적 저렴한 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고 흥행 또한 기본은 하다 보니 영화 제작자들도 밑져야 본전 식으로 조폭 영화를 제작하였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폭 영화로는 ‘친구’처럼 공전(空前)의 흥행성공을 거둔 영화도 있었고, ‘비열한 거리’나 ‘우아한 세계’ 등 조금은 가슴 짠한 영화들도 있었지만 필자는 조폭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마다 보통의 영화에서 보다 욕설이 많은 것도 그렇고, 제대로 된 액션은 고사하고 막무가내로 쇠파이프나 몽둥이 들고 설치며 치고 박기만 한다든지, 또한 겉으로는 의리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배신에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조폭들의 생리가 또한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숙명’은 권상우ㆍ송승헌ㆍ지성 등 소위 우리나라 내놓으라는 얼짱 배우들이 출연하였다는 것만으로 고정 팬을 확보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데뷔한 김해곤 감독 작품으로 이번에는 그 참을 수 없는 식상(食傷)함에 졸음을 쫓느라 힘들었던 영화였다.
조폭 영화의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영화 ‘숙명’을 보고나면 조폭들끼리 만나서 치고 박고 부수고 한 장면들만 기억에 남을 뿐 머리 속에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쇠파이프로 머리를 내리 찍히고 달리는 자동차에 치여 내뒹굴어도 며칠만 침대에 누워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회복되던 김우민(송승헌)이 마지막 정도완(김인권)이 찌른 단칼에는 맥없이 죽고 마는 아이러니를 보며, 영화니깐 그럴 수 있다고 치부하기엔 관객을 너무 우롱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캐릭터 자체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스에 어울리지 않는 코믹(보다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에 가까운 권상우의 연기라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심각하기 이를 데 없이 한 가지 표정뿐인 송승헌의 연기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마약에 시달리면서 무서우리만큼 사랑에 대한 집착을 보인 김인권의 연기가 그나마 이 영화를 살리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가끔씩 다정했던 그들의 지난 모습들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왜 그들이 영화 제목의 ‘숙명’처럼 적(敵)이 되어야 했는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숙명이라는 제목이 어울리지 않게 그들의 관계가 너무 두리뭉실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얽히고설켜있는 주인공들의 관계가 옛날에는 어떤 관계로 다정하였으며, 또 어떤 사연으로 서로를 배신하게 되었으며, 각자에 대한 숙명의 고리가 얼마나 질긴지를 느끼지 못함으로써 영화에는 몰입하지 못한 채 가끔씩 그들이 벌이는 난투극만 지루하게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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