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혈의 누’는 등장인물들의 탐욕과 신분갈등에서 나타나는 살인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 공포를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벌어지는 공포 미스터리 영화이며, 그리고 막판 반전 등 탄탄한 영화적 요소를 고루 보여주면서 시종일관 관람자를 압도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혈의 누'는 탐욕과 위선으로 일그러진 인간의 자화상을 사극 스릴러를 통해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인간의 끝없는 위선이 얼마나 우리를 비참하고 초라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혈(血)의 누(淚)' 즉, 피 눈물이라는 영화 제목은 연쇄살인사건과 관계있는 인간의 죄의식을 암시하는 것으로, 영화 막판에 쏟아지는 핏빛 빗줄기가 바로 인간의 광기, 그 자체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 '혈의 누'를 혹자는 조선시대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두 영화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살인의 추억'은 실화 수준의 한 개인의 살인사건이지만 '혈의 누'는 다분히 인간의 원죄적 내지는 인간의 내면문제에 무게를 싣고 있는 영화이며 살인방법 또한 너무도 인간적(?)이고 잔인하다 할 수 있다.
때는 19세기 조선시대 후반, 어느 외딴 섬마을 동화도에서 조정에 바쳐야 할 제지(製紙)가 수송선과 함께 불타는 사고가 벌어지고, 사건 해결을 위해 수사관 원규(차승원) 일행이 동화도로 파견된다. 그리고 그들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끔찍한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첫 번째 살인사건은 대죄를 범한 사람의 목을 배어 매달아 군중 앞에 공시함으로서 대중을 경계시키던 형벌인 효시(梟示)로써, 시작부터 영화 전편에 흐르는 섬뜩한 느낌이 그러하듯 아이들과 아녀자들이 보기엔 좀 끔찍한 장면이다.
두 번째 살인은 죄인을 가마솥에 삶아 죽이는 형벌인 육장(肉漿)으로, 사건은 점차 미궁으로 빠져들지만 이제 서서히 이야기의 실마리는 하나 둘 풀리기 시작한다.
계급 타파와 인간 평등을 부르짖던 천주교도 강객주(천호진)는 5명의 밀고자와 그토록 존경받고 또 믿었던 마을주민들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고 배신을 당하며, 온 가족이 5가지 참형으로 죽어간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은 이들 5명의 밀고자에게 온 가족이 당했던 5가지 참형을 강객주의 원혼이 그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섬사람(특히 무당)들은 여기며 점점 불안에 휩싸여간다. 그가 죽음으로 끌려가며 하던 말, "내 피가 비처럼 쏟아지는 날, 내가 너희들의 피를 말리고 뼈를 바를 것이다!"라는 말이 그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강객주 자신도 정작 자기 딸을 머슴 두호(지성)가 좋아하는걸 알고 아끼던 그를 내쳤으므로, 이제 관객들은 ‘그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한 머슴의 복수였구나.’를 생각하며 나름대로 범인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세 번째 살인은 죄인을 묶어놓고 물을 묻힌 종이를 얼굴에 몇 겹이고 발라 놓으면 종이에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되어 죽어가는 형벌인 도모지(塗貌紙)이다.
그리고 네 번째 살인은 죄인의 목을 동아로 감아 끌어 돌담에 머리가 깨져 죽이는 형벌인 석형(石刑)으로, 수사관이 범행대상자 앞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다. 범인과의 추격전이 벌어지지만 아직 하나의 살인이 더 남았기에 범인이 잡혀서는 안된다.
이제 마지막 다섯 번째 살인방법은 우리에게 능지처참(陵遲處斬)으로 더 익숙한 형벌로, 죄인의 팔과 다리를 4방향으로 우마에 묶어 동시에 우마를 몰음으로써 사지가 찢겨져 죽게 하는 형벌인 거열(車裂)이 확실하기에 섬에 있는 모든 황소를 한 곳에 모아 범인이 이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영화의 반전 또한 흥미롭다. 관객들이 범인이라 믿었던 머슴 두호 역시 모함한 다섯 명 중 마지막 사람이었고, 강객주를 심판한 관리가 원규(차승원)의 아버지였으며, 정작 범인은 강객주의 딸을 사랑한 제지소 주인의 아들 인권(박용우)이었던 것이다.
사족(蛇足)
영화 '혈의 누'를 한국 근대문학사에 나타난 최초의 근대적인 작품 이인직의 ‘혈의 누’를 영화화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두 작품은 전혀 다른 별개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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