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는 내 운명’은 약한 자에게는 유난히 동정심을 발동하는 우리나라 국민정서를 꿰뚫으며 가끔은 관객을 웃기다가 마지막 끝날 무렵에서 종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흐르게 만드는 정통 멜로영화이다.
영화 ‘죽어도 좋아’를 연출한 박진표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이기도 한 이 영화는 해피엔딩(진정한 해피엔드인지는 관람객 스스로의 몫이겠지만)으로 끝남으로써 슬며시 흐르던 눈물을 잠시 멈추게 한다.
장래 자신의 목장을 갖는 것을 꿈으로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석중(황정민)은 지금은 비록 단 한 마리 젖소가 전부이고 필리핀 여자와의 중매까지도 허사로 끝났지만, 통장을 5개나 갖고 있는 평범하지만 성실한 농촌 노총각으로 어머니(나문희)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다방으로 출근하기 위해 스쿠터를 타고 가는 은하(전도연)를 본 순간 석중은 심장이 멈추고 만다. 그날 이후로 석중은 틈만 나면 다방으로 들락거리고, 하수구에 쏟아버리는 줄도 모르고 매일아침 자신의 젖소에서 받은 신선한 우유를 장미 한 송이와 함께 그녀의 문지방에 놓고 간다.
친구들로부터 짠돌이로 소문난 석중이지만 은하와 함께 있고 싶어 친구들에게 한턱 쏜다며 단란주점에서 흥겨운 시간을 가질 때 노래를 부르며 그에게 다가서는 은하의 과감한 몸짓에 어찌할 바를 모르기도 하고, 그녀를 쉬게 하고 싶다며 다방티켓을 끊어 여관으로 불러 그녀에게 커피까지 타주며 쉬게 하려 하지만, 오히려 그를 유혹하는 은하의 장난기는 그녀를 향한 석중의 마음에 더욱 더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되고 만다.
영화소재는 다소 신파적 내용의 슬픈 멜로영화라 할 수 있지만, 전도연과 황정민의 아침햇살처럼 맑은 모습에서 영화내용의 슬픔과는 다른 소박함과 순수함을 느끼게 한다. 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냥 행복할 것 같은 그들에게 악질적인 옛 애인의 등장과 AIDS감염이라는 중첩된 반전이 영화를 더욱 슬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문득,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한 말이 생각나게 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했던 ‘봄날은 간다’에서는 사랑은 변하는 것으로 표현했다면 이 영화는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 같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기에 처음에는 장난기로 받아들이던 은하도 차츰 석중의 진실된 마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무렵, 석중은 어머니의 성화에 마지못해 은하가 있는 다방에서 맞선을 보게 되고, 이를 본 은하는 알 수 없는 짜증을 부림으로서 그녀의 마음이 차츰 석중에게로 다가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맞선보고 있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홧김에 은하는 티켓 배달을 자청하고 그 곳에서 폭행을 당하고 입원하게 된다. 퇴원하던 날, 퇴원 축하겸 집 앞에서 벌인 야외 소주 파티에서 은하는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며 울음보를 터트리고 이제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두 사람은 결혼에 성공하고 어머니가 잠시 여행을 떠난 사이의 봄날 밤에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는 시골길을 걸으며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야외 욕탕에서 장난기어린 사랑을 나누며 꿈같은 나날을 보내게 된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영원할 줄 알았던 그들에게 뜻밖의 과거남자가 등장하여 은하를 괴롭히고, 석중은 그토록 그가 아끼던 젖소와 장래 목장을 꿈꾸며 저축하였던 현금을 고스란히 옛 애인에게 바친다.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보건소 직원으로부터 그녀가 AIDS에 감염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자 은하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고 했으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은하는 "행복하게 살아라, 미안하다" 는 편지 한 통만 남긴 채 스스로 석중 곁을 떠나고 만다.
가족ㆍ친구ㆍ이웃 모두가 석중에게 그녀를 더 이상 찾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그녀는 내 운명>이라며 생의 희망을 잃고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되고, 은하는 은하대로 다시 사창가에서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다 은하의 옛 애인의 신고로 체포된다.
이들이 불결하다는 이웃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호기심어린 사회가 이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너는 내 운명’이라는 타이틀로 언론이 떠들썩거리고 동정반 호기심반으로 사회의 관심거리가 된다.
2여년의 형이 확정되고, 은하는 석중 어머니와 형이 면회실에서 주는 수모를 고스란히 받으며 참았으나, 석중과의 면회에서는 끝내 관람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만다.
이 영화는 사랑하는 여자가 사회의 지탄을 받는 AIDS에 감염되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AIDS에 감염된 은하와 남편이니깐 감염되었을 것이라는 생각하는 석중에 대해 그 지역주민들은 단체로 예방주사까지 맞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연출하는 등 이웃과 사회는 매몰차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사회의 시선은 언론이라는 매체를 통해 AIDS감염 부부라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결국 은하와 석중은 이들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보란 듯이 그들의 사랑이 확고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영화 ‘죽어도 좋아’에서는 이미 인생의 황혼기라 할 수 있는 70대 노인에게도 사랑은 있다 하며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던 것처럼 박진표 감독이 이번에는 AIDS에 걸린 여성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가지고 우리에게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묻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어렵겠지만 하나의 사랑은 변할 수 없다" 라는 명쾌한 답과 함께.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흥미진진한 재미가 있는 영화, 타짜 (62) | 2024.09.07 |
---|---|
거침없는 액션과 스펙터클한 영화, 스파이더맨3 (57) | 2024.08.31 |
영웅주의와 가족중심 허리우드 블록버스트 영화, 수퍼맨 리턴즈(Superman Returns) (66) | 2024.08.17 |
샴쌍둥이 자매의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공포영화, 샴 (66) | 2024.08.10 |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영화, 다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 (67) | 2024.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