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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연

지역과 함께하는 <석탄시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by kangdante 2024.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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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어온 우리 국민들의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역사문화공간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지난 2024. 4. 26()부터 오는 2024. 9. 22()까지 지역과 함께하는 <석탄시대>’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탄광 장성광업소와 도계광업소가 올해와 내년에 차례로 문을 닫게 되어 문경보령태백석탄박물관과 함께 찬란했던 대한민국의 석탄시대를 돌아보고자 기획하였다고 한다.

 

자원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석탄은 유일하게 경제적 이용이 가능한 화석연료였으며, 산업 발전의 소중한 동력원인 석탄 생산을 큰 폭으로 늘리는 것이 매우 중요했으며 이제 산업 성장의 동력이면서 서민의 연료였던 석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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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긴 시간을 열과 압력을 견뎌 탄생한 석탄과 같이 광부들은 무덥고 깜깜한 탄광 속에서 쉼 없이 일하며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뒷받침했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전국의 광업소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이번 특별전시를 통해 남겨진 석탄산업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해 나갈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 위해 기획한 전시라고 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람시간은 10:00~18:00(, 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야간개관)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이번 특별전시는 1부 석탄 증산으로 경제부흥 이룩하자, 2부 싸이랭 들려온다 일터로 가자, 3부 아빠! 오늘도 무사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탄은 산업의 원동력이자 생활필수품이었으나 광복 직후 남한 지역은 석탄 생산량이 매우 적어 연료난에 시달려 석탄 증산은 대한민국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였으며, 정부는 1950년에 대한석탄공사를 설립하여 생산과 공급을 일원화하였다.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의 개발지원금을 투입해 탄광 시설을 복구하고 수송을 위한 철도를 부설하여 석탄산업의 기반을 마련하여 이후 석탄 생산은 해마다 증가하여 석탄의 자급자족을 달성하였으나, 1966년 연탄파동으로 연탄가격이 폭등하자 정부는 유류 위주의 연료정책으로 전환하였고, 이에 석탄산업이 침체를 거듭하며 위기를 맞이했으나 1973년 발생한 제1차 석유파동으로 다시 석탄 증산 정책이 추진되었다.

 

 

우리나라 탄광 개발은 1903년 평양광업소에서 시작되었으며, 일제의 국권침탈로 평양광업소는 일본 해군성으로 이관되어 자원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광복으로 석탄산업의 주권을 되찾았지만 남한지역에는 산업과 생활에 필요한 석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으며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복구했고, 수송을 위한 산업 철도를 부설하며 생산 증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최초의 석탄 증산 정책은 1956년 석탄개발5개년계획과 연료종합계획이었으며 몇 차례 변경을 거쳐 경제개발5개년계획으로 이어졌고 정부는 지속적으로 석탄 증산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후 석탄산업은 고속성장을 거듭하여 1966년에는 석탄 자원의 자급자족을 달성하게 되었으며, 국내 석탄생산은 광복 당시 연 50만 톤에 불과하였으나 1980년에는 1,862만 톤의 생산량을 기록하게 되는 등 석탄 생산량을 늘려 나라에 보답한다는 증산보국(增産報國)’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구호였다.

 

 

석탄의 증산 계획에 따라 탄광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국영탄광과 더불어 민간 자본이 투입된 민영탄광도 설립되었으며, ‘싸이랭 들려온다 일터로 가자 오늘도 어제같이 씩씩한 걸음이라는 <삼탄가>의 가사처럼, 광부들은 쉬지 않고 3교대로 석탄을 생산하였다.

 

석탄을 생산하는 작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노동 강도가 높고 위험요소가 많기 때문에 탄광에 들어가기 전 모든 근로자들은 의무적으로 안전교육을 받았으며, 1963년 광산보안법이 제정되면서 의무적인 재해방지 교육이 포함되었다.

 

 

갱내는 편히 앉아서 쉴 곳도 없을뿐더러 자연광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광부들은 갱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동발이나 암석에 걸터앉아 안전등 불빛에 의지해 식사를 하였다.

 

탄광에 사는 쥐는 붕괴나 가스 위험 등을 미리 알려주는 존재이므로 쥐가 도시락을 훔쳐 먹어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고 대신 도시락을 높은 곳에 매달아 피해를 방지하였다고 한다.

 

 

석탄이 매장된 탄맥까지 갱도를 뚫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것을 굴진이라고 하며, 이어 탄층에서 채취하는 과정인 채탄을 거쳐 불순물을 골라내는 선탄작업을 마친 뒤에야 비로소 석탄이 생산된다.

 

탄광 내부에는 교통수단의 역할을 하는 광차가 있는데 광차는 용도에 따라 생산된 석탄을 운반하는 탄차와 사람을 운송하는 인차로 구분되며, 폭발물을 운반하는 차량은 붉은색을 칠해 위험을 표시한다.

 

 

광부들은 탄광을 삶의 전쟁터라고 말할 정도로 산업재해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 크고 작은 재해가 빈번하였으며, 탄광 노동자와 가족들의 공포를 반영한 금기가 많아 1970년대까지는 흉몽을 꾸면 출근하지 않아도 공식 결근 사유로 인정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탄광 작업 현장은 예측 불가한 위험이 항상 존재하고 있었으며, 사고가 발생하면 미로 같은 갱도 구조 때문에 일반적인 구조 방식으로는 효율적인 대처가 어려웠으며, ‘산업전사광부들의 넋을 추모하는 위령탑이 곳곳에 세워져 매해 이들을 기리는 위령제가 거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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