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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연

‘국무령 이상룡과 임청각’ 특별전시, 서울역사박물관

by kangdante 202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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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의 뿌리와 서울 사람의 생활, 현대 서울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설전시와 함께 서울의 역사문화를 증언하는 다양한 기증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A에서는 지난 2025. 8. 5()부터 2025. 8. 31()까지 국무령 이상룡과 임청각, 나라 위한 얼과 글특별전시가 있었다.

 

봉오동 전투 주변 지형과 일본군이 진입한 경로가 그려진 당시 전황 약도, 봉오동 전투 상보

 

신흥무관학교의 교관들

 

서울역사박물관의 국무령 이상룡과 임청각특별전시는 많은 독립지사를 배출한 안동시와의 교류협력 전시를 통해, 이상룡 선생의 삶과 사상을 중심으로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투쟁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 특별전시는 이상룡선생의 문집(文集)'석주유고' 내 각종 문학작품과 취지서서간 등에 나타난 근대사상과 역사정신애국애족 정신 등 59건의 서예작품을 통해 선보이고, 또한 고성 이씨 종택인 '임청각'의 역사와 함께 일제에 의해 훼손됐던 기록과 복원 사업 내용도 소개하고 있다.

 

 

국무령 이상룡 취임식 기사와 취임사, 독립신문 호외

 

이상룡 건국공로훈장, 1962년

 

 

이번 특별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국무령 취임 100주년을 맞아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과 업적을 재조명하고, 생가인 임청각 복원 사업을 서울 시민에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이상룡 선생은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항일 무장독립투쟁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도덕적 의무를 몸소 실천한 인물로 꼽힌다.

 

만주에서 겪은 일, 만주기사, (이상룡 지음, 이동익 씀)

 

이번 특별전시에서는 이상룡 선생의 생애 전반을 주요 활동과 함께 소개하고 있으며, 의병운동에 진력하다 좌절을 겪고 서구열강의 사상과 제도를 받아들여 혁신유림(革新儒林)으로 활동하던 초기 모습도 자료와 함께 소개된다.

 

또한, 경술국치 이후 독립운동을 위해 가산을 정리하여 54세에 만주로 가 경학사서로군정서 등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며 활동하던 중년 시기, 그리고 독립 무장투쟁의 정신적 지주이자 독립운동 통합의 상징으로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말년까지 전시되고 있다.

 

압록강변에서 만주를 바라보며, 압록강상망만주, (이상룡 지음, 이동익 씀)

 

독판직을 사임하다. 사독판(辭督瓣), (이상룡 지음, 이동익 씀)

 

산동해에서 풍랑을 만나다, 산동해조풍, (이상룡 지음, 이동익 씀)

 

이상룡이 작성한 신흥무관학교 교가 2절 부분, (이상룡 지음, 이동익 씀)

 

1910년 국권이 강탈당하자 이상룡 선생은 54세가 되던 1911년에 문중의 가산을 정리하여 만주로 망명하고, 만주에 도착하여서는 뜻을 같이하는 애국지사들과 함께 무장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한 자치기구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인 신흥강습소를 열었다.

 

1912년에는 경학사를 계승한 부민단을 만들었으며, 3·1운동 직후인 19194월에는 한인 지도자들과 함께 남만주 독립운동의 총본영인 군정부를 조직하고 서로군정서로 개편하였으며, 교육기관인 신흥무관학교(신흥강습소의 후신)를 통해 35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해 북로군정서 등에 지원해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스스로 뉘우치다, 자회(왼쪽), 문청산일첩(오른쪽), (이상룡 지음, 이동익 씀)

 

효기구점비서장, (이상룡 지음, 이동익 씀)

 

(대련)희망 곤란, (대련)부여 구려, (이상룡 지음, 이동익 씀)

 

이상룡 선생이 작사한 애국가

 

우연히 옳다, 우음, 잠 못이룬다, 무수 (이상룡 지음, 이동익 씀)

 

이상룡(李相龍)은 고성 이씨로 18581124일에 경상도 안동군 법흥동 임청각에서 이승목(李承穆)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상희(象羲)였으나 1911년 중국 망명 이후 '상룡'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고성(固城) 이씨 문중은 15세기 이증(李增)이 영산현감에서 물러난 뒤 안동에 정착하면서 이 지역의 유력 양반가문으로 성장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대한협회 단체의 설립정신과 목적이 담겨 있는 안동대한협회취지서

 

해외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사상분류도

 

서로군정서 의용대 재무부 발행 군자금 영수증

 

이상룡이 김좌진에게 보낸 편지

 

모신나강 소총, 베르단 소총

 

마우저 권총

 

해외에 있던 독립운동가 39인이 만주 길림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서

 

이상룡의 큰아들 이준형 유서

 

허주부군산수유첩, 1763년

 

이준형 건국훈장 애국장, 1990년 수여

 

임청각 복원사업

 

일제는 중앙선 철도를 놓는다는 명목으로 1942년에 임청각의 부속 건물과 문간채 일부를 철거하고 앞마당을 가로질러 선로를 설치하는 등 이상룡 가문의 독립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여겨지는 행위를 자행하였다.

 

이후 2014년부터 임청각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철도 선로를 이전하고 방음벽을 철거하는 등 주변 환경을 정비하는 공사가 추진되었으며, 임청각은 현재 낙동강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진 본래의 모습을 점차 되찾아가고 있다.

 

 

임청각은 조선시대 양반 가옥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임청각의 중심은 '' 자 형 평면을 가진 누각형 건물인 별당 군자정(君子亭)이다.

 

임청각은 고성이씨 법흥종중의 상징적인 건물이며, 살림채는 안채사랑채곁채아래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3년 국가보물로 지정되었다.

 

임청각 매매증서

 

택지 및 산판 매매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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