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위치한 아산 맹씨 행단(牙山 孟氏 杏壇)은
조선시대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孟思誠)의 집안이 살던 곳으로,
지역 안에는 맹씨 고택(孟氏 古宅)ㆍ세덕사(世德祠)ㆍ구괴정(九槐亭) 그리고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고택(古宅)은 원래 고려의 최영장군이 살던 집으로, 최영이 죽은 뒤 비어있던 집에
최영의 손녀사위인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孟希道)가 정란(靖亂)을 피하여 이곳에서 은거하였다고 한다.
고택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工자형 집으로 중앙 2칸에 커다란 대칭을 사이에 두고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을 둔 홑처마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민가(古民家)라고 한다.
이 건물은 1482년 이후 1929년까지 4차례 각각 건물을 손질하여 고친 기록이 있으며,
고택 가구부(架構部)에 남아있는 고부재(古部材)와 창호 등이 견실한 고법을 간직하고 있어
고려시대의 중요한 건축물로 평가된다고 한다.
행단(杏壇)이라는 이름은 맹사성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6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며,
한편으로는 후학에게 글을 가르치고 공부하던 자리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구괴정(九槐亭)에는 세종 때 황희ㆍ맹사성ㆍ권진 등 3정승이 9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2그루만 남아있다.
맹사성은 고려말ㆍ조선초의 문신으로 고려 최영장군의 손주사위이며,
138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검열ㆍ전의시승 등을 지냈고,
조선 태조 때에는 예조의랑ㆍ이조참의ㆍ예문관대제학ㆍ우의정의 벼슬을 하였다.
세덕사(世德祠)는 조선조의 정승인 맹사성(孟思誠)과
두문동 72현인 맹유(孟裕)ㆍ맹희도(孟希道)의 위패를 모신 사우(祠宇)이다.
맹사성은 조선시대 대표적 청백리로 백성의 아픔을 함께 나눈 서민적 정승으로 유명하며,
맹유는 고려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키다 순절하고, 맹희도는 벼슬을 버리고 한민(閒民)으로서 충절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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