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석관동의 천장산(天藏山) 아래에 자리한 의릉(懿陵)은
조선 제20대 경종(景宗)과 그의 계비인 선의왕후(宣懿王后)가 안장되어 있는 능이다.
경종은 장희빈으로 잘 알려진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 장씨(張氏)의 장남으로 태어나 세 살 때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717년(숙종 43년)에 3년간의 청정대리를 끝내고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1720년에 경덕궁(경희궁)에서 즉위하였다.
1689년(숙종15년)에 경종을 원자(元子)로 정호하자 송시열(宋時烈)이 상조론(尙早論)을 주장하다가 사사되고,
경종은 이듬해 세자로 책봉되었고 장희빈은 왕비로 책봉되었다.
경종은 희빈 장씨가 숙종에게 총애 받던 시절에는 총명함이 뛰어난 세자로 칭송받았으나,
숙빈 최씨가 연잉군(영조)을 출산하면서 숙종과 장희빈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세자에게도 관심이 멀어졌다고 한다.
그 후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모함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숙종은 장씨를 왕비에서 희빈으로 격하하고
1701년에 사약을 내렸으며, 이때부터 경종은 점차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했고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경종(景宗)은 재위 4년 동안 신임사화(辛壬士禍) 등 당쟁이 그치지 않았으며,
소생이 없고 병약하여 재위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경종의 계비 선의왕후(宣懿王后)는 함원부원군 어유구(魚有龜)의 딸이며,
세자시절 첫 번째 세자빈이었던 단의왕후가 1718년(숙종 44년)에 사망하면서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며
경종이 즉위함에 따라 왕비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조선 왕릉의 쌍릉(雙陵)은 좌우로 조성되나
의릉은 왕과 왕비의 두 봉분을 앞뒤로 배치한 동원상하봉(同原上下封) 형식으로 능역을 조성한 것이 특이하며,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생기가 왕성한 정혈(正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두 개의 봉분을 앞뒤로 놓아 조성한 것이라 한다.
왕후 능은 왕릉과 마찬가지로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으로 봉분을 호위하고 있으며,
곡장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석물은 왕릉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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