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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23

강화도의 작은 섬 황산도의 황산포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한 황산도(黃山島)는 강화도 옆에 딸린 작은 섬으로, 강화도와 황산도를 잇는 약 500여m의 연륙교가 생기기 전에는 강화도의 또 다른 작은 섬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강화도의 초지진은 군사적으로 강화 외성의 최남단으로 그 중요성이 예전부터 부각되었으나, 황산도는 그에 비해 섬 밖의 섬으로 수 백년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곳이라고 한다. 황산도는 썰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수 ㎞까지 빠져나가 갯벌이 천연 선착장을 만들어주었으며, 연륙교가 생기기 전에는 배들이 지금의 연륙교 바로 앞 갯벌에 되는 대로 배를 대고 생선을 풀었다고 한다. 황산도는 원래 대황산도와 소황산도라는 두 개의 섬이었는데 1962년에 하나로 이어졌으며, 이 후 김포와 강화도를 잇는 초지대교가 건설되면서 관심.. 2020. 6. 2.
강화해안 외곽초소 겸 포대, 용두돈대(龍頭墩臺)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용두돈대(龍頭墩臺)는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 위에 설치된 천연적인 외곽초소 겸 포대였다고 한다. 돈대 입구에는 해안을 수비하던 광성포대가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江華戰蹟地淨化記念碑)와 함께 기념비 양 옆에는 당시에 사용하였다는 홍이포(紅夷砲) 2문이 전시되어 있다. 용두돈대는 광성보(廣城堡)에서 해안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심이 가장 빠르고 폭이 좁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1679년에 세워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라 한다. 용두돈대는 손돌목 돈대에 속해 있으며, 1871년(고종 8년)에 광성포대가 설치되면서 정비되었으며, 이후 1977년에 강화전적지 보수사업으로 성벽을 복원하면서 용두돈대라 부르게 되었다. 2020. 5. 8.
신미양요의 격전지, 강화 손돌목돈대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손돌목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해안가의 중요한 방어시설 중 하나로, 현재 광성보(廣城堡)에 속해있는 3개의 돈대 중 하나이다. 손돌목돈대는 1679년(숙종 5년)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덕진돈대와 함께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광성보 내에 위치해 있다. 손돌목돈대는 구릉 정상부에 위치해 있으며, 다른 돈대와는 달리 둥그렇게 쌓인 돈대이며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가 있었다고 한다. 손돌목돈대는 성곽 길이 108m 넓이 778㎡ 규모이며,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에는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기도 하다. 손돌목돈대는 특히, 신미양요 전투 때 조선군 사령관인 어재연 장군이 직접 지휘하며 격렬하게 반격을 가하던 요새.. 2020. 5. 7.
강화 광성보(廣城堡)와 광성돈대(廣城墩臺)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광성보(廣城堡)는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해안가의 중요한 요새였다고 한다. 강화도에는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한 군사시설로 5진(鎭)ㆍ7보(堡)ㆍ54돈대(墩臺)로 요새화 하였으며, 이들 시설 중 진(鎭)의 규모가 보(堡)보다는 크고, 진과 보 아래에 돈대를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고 한다. 안해루(按海樓)는 광성보의 성문이며, 돈대(墩臺)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활동을 사전에 관찰하고 대비할 목적으로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시설을 말한다. 광성돈대(廣城墩臺)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년)에 함경도ㆍ황해도ㆍ강원도의 승군 8,000여명과 어영군 4,300여명.. 2020. 5. 6.
대몽항쟁 일환으로 건립하였던 강화 선원사지(禪源寺址)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에 위치하고 있는 선원사지(禪源寺址)는 고려 대몽항쟁의 정신적 지주로 삼기 위하여 국민총화의 일환으로 건립한 선원사가 있었던 절터이다. 강화 선원사(禪源寺)는 1245년(고종 32년)에 당시 고려 최고의 권력자였던 최우(崔瑀)가 몽고의 침략을 받아 고려의 도읍을 강화로 옮긴 후 창건한 절이라 한다. 선원사는 그 당시 전남 송광사(松廣寺)와 함께 고려 2대 사찰로 손꼽히던 사찰이었다고 하며, 그 후 고려의 왕실이 다시 개경으로 환도한 뒤에는 차츰 쇠퇴하여 조선 초기 이후에 폐허화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역(寺域)은 크게 네 구역으로 구분되어 층단식(層段式)으로 대지가 마련되어 있으며, 축대가 부분적으로 남아있고 보상화문전(寶相華文塡)ㆍ막새기와ㆍ치미(鴟尾) 등이 출토되었으며 .. 2020. 4. 30.
강화도의 새로운 명소, 조양방직 테마카페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신문리에 위치한 조양방직 테마카페는 우리나라 최초로 옛날 조양방직 폐방직공장 부지를 재활용하여 테마카페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카페 입구로 들어서면 허름한 옛 공장 건물들이 각각의 카페로 변신해 있으며, 다양한 조각상과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파주 헤이리마을 같은 분위기가 나면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옛 공장 건물이었던 대표적인 카페의 내부에 들어서면 엄청난 카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특히 카페 벽이나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사진이나 조형물 등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추억여행이라도 온 듯 빈티지 분위기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이곳 테마카페는 ‘SBS 생방송 투데이’와 ‘KBS2 TV 생생정보’ 등에서도 방영되어 유명세를 타기도 하였으며, 이를 반영하듯 카페 건너편에.. 2019. 10. 10.
철종(哲宗)이 거처하였던 잠저(潛邸), 용흥궁(龍興宮)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위치한 용흥궁(龍興宮)은 조선 제25대 철종(哲宗)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하였던 잠저(潛邸)로,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흥궁은 1853년(철종 4년)에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원래는 민가였던 모양의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궁 안에는 철종의 잠저임을 기록한 비석과 비각이 있으며 건물로는 내전 1동ㆍ외전 1동ㆍ별전 1동 등이 있다. 용흥궁은 좁은 골목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낭채를 두고 있으며, 지붕 옆면이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집이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의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의 건물이다. 내전은 건평 90㎡의 정면 7칸 측면 5칸이며, 별전은 건평 95㎡의 정면 .. 2019. 10. 9.
한옥성당이라 독특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大韓聖公會 江華聖堂)은 대한성공회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현존하는 한옥 성당 건물로서도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고 한다. 강화성당은 1896년에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대한성공회 초대 주교인 찰스 존 코프(Bishop Charles John Corfe)가 1900년에 축성한 한옥 성당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강화성당은 1893년 갑곶이 성 니콜라 회당에서 선교를 시작하고 1897년 조선왕실 통제영학당의 영국인 교관으로부터 관사와 대지 3천여 평을 매입하여 성바우로 회당이라 축복함으로서 선교본부를 강화 선내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조마가(3대 교주) 신부와 김희.. 2019. 9. 12.
강화산성의 북문 진송루(鎭松樓)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에 위치한 강화산성(江華山城)은 고려시대의 산성으로, 몽골의 침입으로 1232년에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기고 대몽항쟁을 위하여 흙으로 쌓은 토성이다. 강화산성은 1232년 몽고의 제2차 침입으로 또다시 위협이 가해지자 강화도에 왕궁과 성ㆍ관아시설을 축조하였으며, 공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강화도로 천도하여 2년 후인 1234년(고종 21년)부터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강화도로 천도한 후 궁궐을 지을 때 도성도 함께 쌓았는데 개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내성(內城)ㆍ중성(中城)ㆍ외성(外城)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의 강화산성이라 한다. 강화산성은 원래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었으나 1677년(숙종 3년)에 현재와 같은 석성(石城)으로 이루어.. 2019. 9. 11.
성현(聖賢)들의 제사와 지방민의 교육기관, 강화향교(江華鄕校)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위치한 강화향교(江華鄕校)는 성현(聖賢)들에게 제사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세웠던 국립교육기관으로, 1127년(고려 인종5년)에 고려산(高麗山) 남쪽기슭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강화향교를 처음으로 창건한 곳은 내가면 고천리(고읍)였으나 1232년(고종19년)에 갑곶리(甲串里)로 옮겼다가 몽고군의 침입으로 다시 서도면(西島面)으로 이건하는 등 여러 차례 옮기고 복원하였으며, 1731년(영조7년)에 유수 유척기(兪拓基)가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ㆍ명륜당ㆍ동재(東齋)ㆍ서재(西齋)ㆍ제기고(祭器庫) 등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大成殿)에는 중국의 5성(五聖)과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2018. 8. 27.
광성보(廣城堡)의 광성돈대(廣城墩臺)와 안해루(按海樓)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광성보(廣城堡)는 덕진진ㆍ초지진ㆍ용해진ㆍ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광성돈대(廣城墩臺)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년)에 함경도ㆍ황해도ㆍ강원도의 승군 8,000여명과 어영군 4,300여명이 40일 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안해루(按海樓)는 광성돈대의 성문이며, 돈대 내에는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으나 1977년에 당시에 사용하였던 포좌 4개소와 소포 3문을 돈대 안에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광성돈대의 성문인 안해루(按海樓) 광성보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한 후에 쌓은 성으로, 1658년에 강화유수 서원이(徐元履)가 처음으로 광성보를 설치하.. 2018.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