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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여행] 서울 가볼만한 곳(한옥)

by kangdante 2021.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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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옥마을로써 대표적인 곳은 북촌 한옥마을과 남산골 한옥마을 등을 들 수 있겠지만,

마을이 아닌 단독 가옥으로는 백인제 가옥최순우 옛집창녕위궁 재사진흥선원창덕궁 연경당 등을 들 수 있다.

 

1. 남산골 한옥마을

 

서울 중구 필동의 남산 북쪽 기슭에 자리한 남산골 한옥마을은 서울의 사대부가로부터 일반 평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 한옥 다섯 채를 이전복원한 마을로 조선후기 서울의 주거문화와 당시의 건축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해풍부원군 윤택영재실(海豊府院君 尹澤榮齋室)은 원래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으로

건물의 배치는 으뜸 원()자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자형으로 된 사당(祠堂)은 집의 제일 안쪽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김춘영가옥(金春永家屋)은 조선말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김춘영과 그의 손자인 김홍기가 살았던 가옥으로,

원래는 종로구 삼청동에 있었던 가옥을 이곳 한옥마을로 이건(移建)하였다.

 

 

도편수 이승업가옥(都片手 李承業家屋)은 청계천 부근의 삼각동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한 가옥으로,

현재 안채사랑채중문 만이 남아있다.

 

 

관훈동 민씨가옥(寬勳洞 閔氏家屋)은 종로구 관훈동 일대 너른 땅에 여러 채의 집을 짓고

일가붙이와 함께 살았던 일제 강점기의 대부호였던 민영휘(閔泳徽)의 저택 중 일부라고 한다.

 

 

옥인동 윤씨가옥(玉仁洞 尹氏家屋)은 원래의 가옥 부재(部材)가 너무 낡고 손상이 심해서 옮기지 못하고

옥인동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본떠 복원한 건물이라고 하며, 복원된 가옥 안에는 그 당시의 가구들도 배치하여

우리 옛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2. 백인제 가옥(白麟濟 家屋)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위치한 백인제 가옥(白麟濟 家屋)1913년에 이완용의 외조카인 한상룡이 건축하였다고 전해지며,

2,460대지 위에 전통방식과 일본양식을 접목하여 지은 근대 한옥으로

당시 새로운 목재인 압록강 흑송(黑松)을 재료로 지은 최고급 한옥이라 한다.

 

이 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복도가 있어서 문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이동할 수 있으며,

대청과 툇마루는 전통적인 우물마루로 구성하였으나 사랑채는 일본식 장마루를 적용하였다.

 

 

이 건물에서는 조선총독부 총독들과 권력가들이 연회를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역사가옥박물관으로 새롭게 개관하여 201511월부터 일반시민들에게 전면 개방하였다.

 

 

3. 최순우 옛집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선생의 옛집은 1930년대 한옥으로,

건물의 형태와 현판 그리고 정원 등이 조선시대 말() 선비의 멋과 운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시민문화유산 제1(등록문화재 제268)이다.

 

'혜곡 최순우 기념관'으로 2004년에 개관한 이 옛집은 오색단청의 화려함은 없으나

수수한 조선의 산수화를 보는 듯 옛집의 여유로움이 깊이 배어있다.

 

 

방안에는 최순우 선생이 생전에 쓰던 자필 원고와 안경 등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선생의 지인들이 기증한 석상과 고가구, 그리고 도예가들이 기증한 백자들도 전시되어 있어 한층 볼거리를 제공한다.

 

혜곡 최순우(兮谷 崔淳雨) 선생은 한국 도자기와 목공예, 회화사 분야에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으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등을 집필하였다.

 

 

4. 창녕위궁 재사(昌寧尉宮 齋舍)

 

서울 강북구 월계로의 북서울꿈의숲 안에 자리한 창녕위궁 재사(昌寧尉宮 齋舍)

조선 순조(純組)의 딸 복온공주(福溫公主)와 부마(駙馬) 창녕위 김병주(昌寧尉 金炳疇)의 재사(齋舍)이다.

 

궁재사(宮齋舍)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전통 한식 건축양식의 단층 목조 기와집으로,

안채사랑채대문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높은 장대석 기단으로 둘러 싸여있다.

 

 

궁 재사(宮 齋舍) 건물은 현재 제청이 사랑채가 아닌 안채에 위치한 것이 특이하다고 하며,

사랑채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나 정면의 안채는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재건축한 건물이라 한다.

 

이 건물은 1800년대에 지은 건물로 김병주의 손자인 항일 우국지사 김석진(金奭鎭)이 살았던 집이기도 하며,

일제가 남작의 작위(爵位)를 주며 회유하려 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아편을 먹고 자결한 곳이라고 한다.

 

 

5. 진흥선원(鎭興禪院)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한 진흥선원(鎭興禪院)

조선 말 순조(純祖)의 셋째 딸 덕온공주(德溫公主)와 결혼한 부마 윤의선(尹宜善)과 윤의선의 양자 윤용구가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옥은 이후 김진흥(金鎭興)이 살다가 1998년 불교재단에 기증하여

현재는 진흥선원(鎭興禪院)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절이 되었으며,

이 건물은 조선시대 부마도위(駙馬都尉)의 집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고 하며,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다.

 

 

남향한 넓은 터에 자형 중문간 행랑채자형 안채자형 사랑채자형 별채가 놓여 있고,

안채의 왼쪽에는 자형 별당채가 안방을 마주하고 있다.

 

건물 사랑채 대청에 보관되어 있던 상량문(上樑文)에 을축년(乙丑年)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건립연대는 1865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6. 창덕궁 연경당(演慶堂)

 

서울 종로구 와룡동의 창덕궁 후원(後苑)에 있는 연경당(演慶堂)

효명세자(익종)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의례(儀禮)를 행하기 위해

1828(순조 28)에 궁궐 안에 조선시대의 사대부 살림집의 제도를 본떠 지은 가옥이라 한다.

 

궁궐의 전각이면서도 단청(丹靑)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으로 후원의 정취를 살린 민가 형식의 건물이기는 하나,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데 비해 연경당은 120 여 칸이나 된다고 한다.

 

 

연경당은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종 이후에는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서재인 선향재(善香齊)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후원 높은 곳에 있는 농수정(農繡亭)은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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