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율곡로에 자리한 서울공예박물관에서는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를 4부로 나누어 고대/고려ㆍ조선ㆍ대한제국ㆍ일제강점기 등으로 구분하여
공예발전의 역사와 시대별 공예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공예발전의 역사라 할 수 있으며
돌ㆍ흙ㆍ나무ㆍ불 등 흔한 자연 소재를 이용하여 문명발전의 토대를 세웠으며,
장인들의 손에서 광석은 금속공예로, 흙은 토기를 거쳐 청자와 백자로, 나무와 전복 껍데기는 나전칠기 등으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신석기시대부터 인류는 흙과 불을 이용하여
토기에서 도기로, 도기에서 다시 자기로 그릇의 강도를 높이고 취향에 따라 표면을 다양한 기법으로 장식하였다.
청동기 시대부터 금속공예품들은 사회계층을 나누는 수단이 되었으며,
향완ㆍ금강령과 금강저ㆍ동종 등의 다양하고 정교한 불교 금속공예품은 신분제도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활발한 국제교류 속에 11세기경부터 통일신라시대 향로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나팔 모양의 받침대ㆍ밥그릇 모양의 몸채ㆍ원반모양 입술 등으로 구성된 향완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금강령은 불교사찰에서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작은 종으로,
흔들면 맑은 소리가 난다.
조선은 개국 초기 법률을 통해 장인들을 관리하고 국가의례에 필요한 공예품을 제작하였으며,
장인들은 국가의 체계적인 관리아래 국가행사에 대규모로 동원되어 공예품을 제작하였다.
장인들은 왕실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필요한 의식주와 관련된 다양한 일상용품도 제작하여
국가운영의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옷칠문화는 삼국시대부터 발전되었으나 나전칠기가 활짝 꽃피운 것은 고려시대이며,
서울공예박물관에서는 나전칠기 중 가장 뛰어난 나전경함(螺鈿經函)의 아름다움 비법을 재현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왕실의 도자기를 제작하던 분원공소(分院公所)의 공인(貢人)이었던 지규식(池圭植)의 하재일기는
1891년부터 1911년까지 약 20여 년간 기록된 일기이며,
하재일기의 7,498일의 기록은 우리 도자공예가 걸어 온 근대화의 여정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은 1876년 개항 이후 밀려드는 서구의 제도와 문물을 수용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선포하였으며,
옛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의 개혁을 하였다.
사회전반에 나타난 근대화의 흐름과 함께 전통 방식의 수공예가 쇠퇴하고
오히려 공예가 산업기술로 인식되었으며 공예는 근대의 문을 열게 된다.
고종황제는 자주적인 강대국을 만들기 위해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ㆍ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독립관을 설치하여
도자기ㆍ나전칠기ㆍ비단ㆍ금속공예품 등을 출품하였다.
특히 파리박람회는 산업기술을 도입하고 근대화를 촉진하는 수단으로서의 공예를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고
전통공예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공예품이 관광상품으로 주목받으면서 자본기들이 공예품의 제작과 판매에 참여하였고
백화점이나 상점을 통해 유통되었다.
상표나 고유 마크가 일반화되면서 본격적인 산업공예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선진교육을 경험한 공예가의 등장과 다양한 형태의 전시회를 통해
순수미술로서 공예의 지평이 열리며 현대공예의 토대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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