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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조선후기 중산층 가옥 오촌댁(梧村宅)과 효자비(孝子碑)

by kangdante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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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자리한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오촌댁(梧村宅)

조선후기 중산층 가옥형태를 잘 보여주는 가옥으로,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 있던 것을

2010년에 기증 받아 옮긴 건물이라고 한다.

 

오촌댁(梧村宅)이라는 명칭은 영양 남씨 남용진(南龍鎭)

경북 영덕군 장수면 오촌리 출신의 재령 이씨(載寧 李氏)와 혼인하면서 붙여진 택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촌댁의 건립연대는 집을 해체 과정에서

‘도광이습팔년무신삼월이일신시립주상량동일시(道光貳拾捌䄵戊申三月二日申時立柱上樑同日時) 라고 적힌

상량문이 나와 1848년에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오촌댁 건물은 가옥의 중앙에 마당이 있는 'ㅁ'자 형태로,

지붕의 용마루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안채와 사랑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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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촌댁의 거주 공간으로는 안방상방사랑방문간방 등 4개의 방과

안마루(대청)사랑마루정지(부엌)물건을 넣어두는 도장방창고인 고방(庫房)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 출입은 뒤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모두 가능하며,

뒷마당에는 장독대를 두었고 오른쪽 마당에는 디딜방앗간과 우물화장실을 배치하였다.

 

 

연자방아는 평평한 원형의 돌판 위에 다시 둥근 돌을 얹어 이것을 소나 말로 돌려 곡식을 찧는 도정(搗精)기구로,

연자매돌방아돌방애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손으로 윗돌을 돌려 곡식을 가는 맷돌과는 달리

연자방아는 가축의 힘에 의해 윗돌과 아랫돌이 수직을 이뤄 돌아가기 때문에 일의 능률이 휠씬 높으며,

연자방아를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장만해 함께 사용하였다고 한다.

 

 

효자각과 효자문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효자에게 내린 표창인 효자정려(孝子旌閭)

태인 허씨 허권(許權)에게 내린 것을 기념한 효자비(孝子碑)와 그 보호 건물이다.

 

효자비와 효자문을 통해 효를 중시했던 당시의 사회상과 건축기술공예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이 건물은 전북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의 허권 후손의 살림집 안에 있었던 것을 2008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옮기는 과정에서 기둥 일부를 보수하였고 담장을 둘러 영역을 표시하였으며,

효자각은 화려한 단청과 함께 연꽃 봉우리봉황 등이 조각되어 있다.

 

효자문에는 孝子門이라고 쓴 현판과 호랑이, 그리고 매화난초국화대나무(梅蘭菊竹)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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