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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연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 국립한글박물관

by kangdante 2023.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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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용산동에 위치한 국립한글박물관은 우리문화의 정수인 한글과 관련한 자료의 수집조사연구를 통해

다양한 전시교육행사를 제공하여 한글과 한글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확산하는 박물관이라고 한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우리 문화의 기초이고 그 자체로 한글로 숨 쉬고 자연과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로운 가치창출과 세계문화의 창의성 증진에 기여하는 박물관이라고 한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으며,

상설전시는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으로 훈민정음 머리말의 문장에 따라 7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구성은 1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2부 내 이를 딱하게 여겨, 3부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4부 쉽게 익혀,

5부 사람마다, 6부 날로 씀에, 7부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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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노랫말 580수를 모아 한글로 쓴 책, 청구영언(복제)

 

1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에서는 우리말은 중국말과 너무나 달랐으나 우리말을 적을 글자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의 글자인 한자를 빌려 쓰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우리나라는 이두(吏讀)구결(口訣)향찰(鄕札) 등의 방식으로 한자를 응용해 우리말을 적기도 하였으나

이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렵고 불편하였기에

한자를 배운 일부 계층을 제외한 많은 사람은 여전히 글자를 읽고 쓸 수 없는 시절을 보내야 하였다.

 

성인들의 한글학습을 위해 계몽운동 경상북도협회에서 만든 반절표

 

순원왕후가 딸 덕온공주에게 보낸 한글편지

 

2내 이를 딱하게 여겨에서는 글자를 아는 것이 곧 권력이었던 시절에

글자를 몰라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

 

세종의 한글 창제는 이처럼 백성을 깊이 사랑하는 애민 정신을 비롯해

중국과 다른 우리만의 글자가 필요하다는 자주정신, 실생활에 쓰임이 있어야 한다는 실용 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 한들전파에 기여한 구활자본 소설

 

관상이 좋지 않은 얼굴점 뽑기 광고지

 

3스물여덟 자를 만드니에서는 한글은 그 당시 훈민정음이라 불렀는데

자음 글자 열일곱 개와 모음 글자 열한 개를 합한 스물여덟 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어

어떤 백성이라도 누구나 쉽게 배워서 편히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훈민정음은 그 창제 목적에 맞게 모양이 매우 단순하고 글자의 수가 적었으며,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뜬 다섯 개의 기본 자음 글자는 소리의 세기에 따라 획을 더함으로써

열일곱 개의 글자로 확장하였으며

하늘사람의 모양을 본뜬 세 개의 기본 모음 글자는 각 글자를 서로 합성함으로써 열한 개의 글자가 탄생하였다.

 

음식조리법을 한글로 쓴 책

 

한글로 쓴 사주점 책

 

4쉽게 익혀에서는 우리 백성들이 한글을 통해 삶에 필요한 학문과 지식을 쉽게 익힐 수 있었고,

한글 창제 초기에는 당시 민간에 널리 퍼져 있던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불경을 한글로 펴냈다.

 

이후에는 주로 유교 경전을 번역해 한글로 옮김으로써 조선의 통치 이념을 널리 알렸으며,

16세기 말 임진왜란 이후로 구황질병무예 등 실용 지식과 제도법률에 대한 정보를 한글로 보급하기에 이르렀다.

 

한글로 쓴 사주점 책, 당사주

 

양반이 노비에게 한글로 쓴 편지

 

5사람마다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글을 통해 신분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고,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여성만 사용했다는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실제로 한글은 왕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사용한 글자였다.

 

그밖에 다양한 생활용품에 물건의 수량이나 주인의 이름을 한글로 적기도 하고,

삶의 희로애락과 지혜를 담은 각종 문학서와 실용서들이 한글로 만들어지기도 하여

개인의 일상생활 곳곳에 한글이 스며들었다.

 

정조가 큰외숙모에게 한글로 쓴 편지

 

한글로 쓴 운수를 점치는 책

 

6날로 씀에에서는 한글은 450여 년이 흐른 1894년에야 공식적인 나라의 글이 되었으나,

1910년에 일제에 나라를 빼앗김에 따라 한글도 국문의 지위를 잃고 말았다.

 

한 민족의 정체성은 말과 글에서 비롯되기에 당대 지식인들은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글에 대한 연구정책교육문학 활동 등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낼 수 있었다.

 

과부 정씨가 어사또에게 올린 청원문,  정소사가 한글로 쓴 청원내용

 

세종이 한글로 지은 부처칭송 가사

 

7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에서는 훈민정음 머리말의 마지막에 쓴 문장처럼

한글이 보다 나은 문자 생활을 가능케 하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좀 더 나은 삶과 문화를 누리는 세상을 바랬다.

 

1945년 광복 이후로도 정확한 한글 소통을 위해 각종 표기법 정책들이 만들어졌고,

아름다운 형태를 갖춘 한글 서체들이 개발되고 한글은 사용자에게 편안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수양대군이 한글로 번역한 부처의 일대기, 석보상절(복제)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포함한 활자로 찍어낸 책, 금강경삼가해(복제)

 

한문본 훈민정음을 우리말로 풀어 쓴 글, 훈민정음언해본(복제)

 

한글의 창제배경과 원리를 설명한 책, 훈민정음해례본(복제)

 

세종을 상징하는 도장, 세종어보(복제)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지난 2023. 5. 4()부터 오는 8. 20()까지

한글잡지 어린이창간 100주년 기념 어린이 나라기획특별전 전시를 하고 있다.

 

관람 시간은 월~, 일요일은 10:00~18:00까지이고 토요일은 10:00~21:00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청춘 창간호

 

보통학교 조선어급한문독본

 

각종 학생잡지

 

어린이 잡지는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시기에 우리 겨레의 앞날을 짊어진 어린이를 교육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높아졌으며,

민간에서 펴낸 아동 잡지와 학생 잡지는 우리말을 배울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어린이를 위한 잡지를 만들기까지 밤낮없이 일하던 편집실의 모습과 참여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

그리고 잡지의 제작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학생 창간호 등

 

붉은저고리 창간호

 

신뭉형태로 발행된 어린이

 

어린이 편집실에 쌓인 독자 엽서

 

개벽사가 10년동안 발간한 간행물의 모습이 실린 '어린이' 제8권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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