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위치한 면천읍성(沔川邑城)은 관아와 면천읍의 주민들을 왜구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1439년(세종 21년)에 쌓은 평지 읍성(邑城)이라고 한다.
면천읍성은 왜구침략 방어뿐만 아니라 천주교 박해와 관련이 있으며, 동학농민운동 당시에 전투가 치러지는 등 역사적 사건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면천읍성은 성의 둘레 약 986m 높이 약 4.5m이고, 적대(敵臺) 7곳ㆍ성문 3곳ㆍ옹성(甕城) 1곳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은 서쪽 성벽 일부의 성 돌만이 남아 있다.
성 돌에 ‘기미년(己未年)’이라 새겨져 있는 것과 1439년(세종 21년)에 이 성을 쌓았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성 돌에 새겨진 기미년은 이 성을 쌓은 연대임을 알 수 있다.
면천읍성은 당진ㆍ서산ㆍ태안 등과 더불어 옛 부터 중국으로 통하는 바닷길이 있었던 곳으로 중국과의 통상에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였으며, 동시에 국방상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하여 백제시대부터 중요한 거점으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면천읍성은 2007년부터 대규모 복원이 진행되어 현재 남문ㆍ옹성ㆍ장청 등이 복원되었으며 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어 있다.
면천읍성은 조선시대 성을 쌓은 규정이 가장 잘 반영된 우수한 유적으로 동ㆍ서ㆍ남ㆍ북의 사대문까지 갖춘 성이었으며, 성을 쌓을 당시는 치성과 옹성의 길이를 합한 전체 길이가 1,564m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지금의 읍성이 세워진 것은 1439년(세종 21년)으로 조선 후기까지 면천의 군사 및 행정중심지의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성벽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쌓았으며 외부는 석축이고 내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고 쌓았다.
풍락루(豐樂樓)는 지금은 사라진 면천관아의 문루(門樓)였던 누각으로,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52년 당시 면천군수 이관영이 중수한 후 풍락루라 이름지어 현판을 걸었고 풍락루기를 남겼다고 한다.
그 후 노후와 붕괴될 위험이 있어 1943년에 철거하였다가 2007년에 철거전의 사전을 토대로 2층 누각형식의 팔작지붕 건물로 복원하였다고 하며, 풍락루라 이름 지은 것은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으로 살기 좋은 땅에서 백성과 더불어 평안하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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